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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미 Apr 18. 2023

아이라는 다정하고 소란한 행복


주말이 되면 우리는 짐 없이 단촐하게 집을 나선다.


운동화를 신고, 

실컷 뛰어다닐 수 있는 간편한 옷을 입고,

공원으로, 숲으로, 산으로, 바다로.     


하늘과 바람과 햇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걷고 또 걷는다.



     

조그마한 풍뎅이 한 마리로 30분 동안 수다를 떨기도 하고,

실없는 소리에 배가 아프도록 웃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걷다가 

‘아, 좋다.’ 말하면, 

메아리처럼 두 남자의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아, 좋다."

"아, 좋다."


굵고 낮은 목소리와

앳되고 맑은 목소리.


좋은 순간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한참을 걷다가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은 이 길로 가보자!”


이미 만보 넘게 걸었는데 낯선 길로 들어섰다가 

한참을 더 걷게 될까 봐 망설이고 있는데 아이가 덧붙였다.


“맨날 갔던 길만 가지 말고 안 가본 길로도 가봐야지, 엄마~”

     

늘 같은 것만 하게 되는 어른의 단조로운 삶에

아이는 변주를 가져온다.     



아이가 가보자고 했던 길



처음 걷는 길이 주는 낯선 풍경이 마음을 환기 시킨다.


우거진 나무도 좋고, 

울퉁불퉁한 흙길도 좋다. 

길 끝에 다다르자 펼쳐진 바다 풍경도 좋다.     


“아, 좋다. 쭈리 덕분에 너무 좋은 곳을 발견했네.”

“거봐 엄마~ 모든 길은 처음엔 다 가보지 않은 길이야. 이렇게 오니까 좋은 게 엄청 많잖아~”     


꼬마 철학자의 말에 가슴이 쿵쿵 울린다.     


길 끝에서 만난 바다



맞다.


모든 길은 처음엔 다 가보지 않은 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한발 내딛으면 그만큼 세상이 넓어진다는 것을 아이는 그냥 다 알고 있었다.      


한계 짓고,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어른보다


자연의 본성에 따라 움직이는 아이는 

훨씬 더 우주의 진리를 가슴에 품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이 덕분에 오늘도 내 삶에 작은 변주를 허락했다.                 



길 가다 멈춘 곳에서 발견한 그날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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