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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미 Mar 10. 2024

시위 좀 합시다

집회 및 결사의 자유와 집시법의 역사


2022년 5월 연세대 재학생 일부가 교내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연 집회의 소음에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노조 집행부를 업무 방해 등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또한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금 등 약 640만 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도 진행했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미신고 집회라 하더라도 정당한 쟁의행위라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집회 소음이 학습권을 침해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단하여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도 모두 원고가 부담하라고 명했다.



시급 440원 올려달라고 했다가 고소당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 소속 청소·경비 노동자 20~30명은 지난 2022년 3월부터 4월까지 시급 440원 인상과 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점심시간을 쪼개 1시간 가까이 피켓팅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집회를 하며 확성기를 이용해 민중가요를 틀고 구호를 외치며 꽹과리를 쳤다. 이후 소음 민원이 제기되자 2022년 8월까지는 학생회관 앞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2022년 고소 당사자 학생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소음을 측정하자 평균 63.3데시벨(db), 최고 75db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1분 평균소음도 65db, 최고소음도 85db에 미치지 않았다.


본 사건의 논점은 크게 '집시법 위반 여부'와 '수업권 침해 여부'로 나뉜다. 우선 본 집회가 미신고 집회이기는 하지만 사업장 내 정당한 쟁의 행위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이 제한된다. 또한 재판부는 집회 소음이 학생들의 학습활동에 심각한 장애가 될 정도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60db는 1m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평균 대화 소음, 70db는 자동차 실내 소음, 80db는 대도시 거리 소음 정도다. 시끄러워서 자동차도 못 타는 사람들이었을까? 백번 양보해서 청각이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치자.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시급 '440원'을 올리기 위해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뜨거운 햇빛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점심시간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야외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신고할 수 있었을까.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한 노브랜드에서 파는 봉지라면 하나당 가격이 440원이란다. 당신들이 배고플 때 끓여먹는 라면 한 봉지 가격도 되지 않는 시급을 올려달라고 했다가 고소까지 당했다.



상대적 기본권인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회나 시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시위에 대해서는 시끄럽다며 눈 한 번 흘기고 넘어가지만, 시위로 인해 본인이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 순간 곧바로 낯빛을 싹 바꾸며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한다.


우리 헌법은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이는 민주정치의 실현에 기여하는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다. 하지만 집회 및 결사의 자유는 무한정 누릴 수 없는 것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상대적 기본권이다.


이 기본권은 제헌헌법 제13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며 1960년의 헌법에서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훼손할 수 없으며,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를 규정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일제시대의 유산, 군사권위주의의 산물 집시법


집시법의 역사를 보면 집시법이 일제시대의 유산이자 군사권위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의 점령 기간 동안 남한에는 일본법과 군사점령의 기득권에서 끌어낸 특별법과 임시법이 혼재하였고 그 동안 집시법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사례가 존재한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집회에관한법률'이 제정되었으나 이 당시에는 벌금형과 같은 가벼운 형에 그쳤다.


그러나 '5·16쿠데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게 되며 그는 본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억압 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로 시위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장 및 경찰국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했다. 유신체제 선포 이후 집시법의 억압 강도는 더욱 높아졌고 이러한 기조는 전두환 정권까지 지속됐다.


하지만 1999년 김영삼 정권에 이어 2기 문민정권이 들어서며 집시법도 이전에 비해 민주적인 절차와 내용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 참여를 일상화시키겠다며 스스로 참여정부라고 이름 붙인 노무현 정권에서는 집시법을 유지 또는 강화하려는 경향이 도드라졌다.


정리하자면 집시법은 군사정권 시절에 사회적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강도 높게 만들어진 법이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기본적인 내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전신고제? 사전허가제!



집회 개념의 모호성, 야간 옥외집회 금지 등 집시법을 두고 오랜 기간 동안 논쟁이 벌어져 왔지만 가장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사전 신고제다.


집시법상 사전신고의 성격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경찰관청 등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집회의 순조로운 개최와 공공의 안전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것으로서, 협력의무로서의 신고”라고 한다. 즉, 일정한 신고 절차만 밟으면 옥외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행법에 따르면 신고하더라도 금지통고의 사유가 되는 조항이 6개 조항 10여 개의 항목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조건이 붙는데 이를 정말 협력의무로서의 신고라고 볼 수 있는가? 이 정도면 사전허가제라고 불러야 할듯싶다.


또한 헌재는 사전신고제가 공공의 안녕질서를 보호하고 그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마치 집회 및 시위가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며 기본권적 가치와 사회 일반의 이익을 같은 선상에 위치시키면서 집회의 자유와 보장을 약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헌재는 “사전신고제와 관련해서 집회개최자가 겪어야 하는 불편함이나 번거로움이 신고로 인해 보호되는 집회의 자유 보장, 공공의 안녕질서와 비교해 볼 때 결코 중대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전신고제의 문제는 '단순 불편함이나 번거로움'이 아니라 신고제로 인해 자유 행사를 어렵게 만드는 위축효과다.

법의 개입은 언제나 최소화돼야 한다


법은 언제나 최대한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 엄마가 언제든지 맘껏 티브이를 봐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는 보면 안 되고, 티브이를 보기 전에는 미리 엄마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함께 붙인다. 그렇다면 나에게 진정으로 티브이를 볼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인식이 제도를 만들기도 하지만 제도가 인식을 만들기도 한다. 지금처럼 집시법이 과도하게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사람들에게 집회와 시위는 민주주의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행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공공의 안녕질서를 방해하는 행동으로 인식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되는 권리다.



<참고>

김종서. (2010). 집시법의 몇 가지 문제점. 법학연구, 13(3), 147-178.

이선엽. (2008). 집시법의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 제도의 경로. 한국행정사학지, 22(0), 143-172.

"정당한 쟁의행위" 연세대 청소노동자 판결내용 보니. 뉴시스. 2024.2.8.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40208_0002621717&cID=10203&pID=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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