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는 누구 잘못인가요?
정치 과잉과 대화 부재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는 누구 잘못인가? 1. 부산광역시, 2. 정부, 3. SK, 4. 현대, 5. 삼성.
유명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나락퀴즈쇼라는 콘텐츠의 출연자에게 던지는 질문 중 하나다.
나락은 회생 불가능한 상황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원래는 불교 용어로써 죄업을 짓고 매우 심한 괴로움의 세계에 난 중생이나 그런 중생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나락 퀴즈쇼는 출연자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나락'으로 갈 수도 있는 예민한 질문을 던지는 퀴즈쇼다. 질문 목적을 아는 출연자 대부분은 물론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모 인터넷 방송에서는 RPG 관련 댓글을 달지 말라고 했단다. RPG는 흔히 말하는 게임의 한 종류인 Role Playing Game이 아닌 Religion(종교), Political(정치), Gender(젠더)의 약자다.
사실 RPG를 대화 주제로 삼았다가 나락 갈 수 있는 건 유명인뿐만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던 중에 자칫 정치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말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를 할 때 정치나 젠더 관련 이슈는 피해야 할 대화 주제 1순위다.
모순되게도 우리는 '정치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신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정치면이다. 뉴스를 보려고 티브이를 켜도 아나운서가 가장 먼저 말하는 주제는 정치다. 심지어 유튜브에서도 각종 정치 관련 유튜버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한국에서는 정치가 가장 중요한 논제인가 싶다가도 일상생활에서는 정치 얘기가 쏙 빠져있다.
원인은 지나친 양극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 이야기는 진보 빨갱이 아니면 보수 꼴통 찾기로 변해 언쟁으로 번지기 일쑤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쁜 지금, 다른 사람과의 대화 중에 이런 논쟁거리가 한 번 나오기라도 하면 피곤해지는 것이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지나친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게 되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악마화하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악마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으니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게 되고, 만약 이야기를 하더라도 상대방의 논리를 전혀 수용할 생각이 없기에 쉽사리 싸움으로 번진다.
하지만 사회 및 정치 문제를 입 밖에 내지 않는 상황의 본질적인 문제는 대화의 부재에 있다. 대화는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스스로 자신만의 논리에 빠져드는 것을 방지하고 나와 다른 입장에 서있는 사람의 생각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헌법 이곳저곳에 적혀있는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본령도 대화에 있다. 산업화 이후 집단적 가치보다 개인을 우선시하게 된 이래로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에서, 하나의 법칙에 따르며 살게 해주는 것이 바로 대화다.
안타깝게도 지금 사회에는 대화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가 없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이 단독으로 입법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양당은 서로의 논리 속에 잠식되어 타인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제 생각대로만 행동한다. 물론 일상생활 속에서도 대화는 없다. 대화의 부재로 인해 다른 사람을 이해할 길이 없어져 나와 다른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넘어가 버린다.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지니 이상한 사회가 된다.
내 생각이 전부 옳다는 사고를 버리고 타인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경청도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시선을 내가 아닌 타인으로 돌릴 때 이해의 여지는 더욱 커지고, 그제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예민한 주제를 꺼내는 순간 나락 가는 세상에서 오히려 예민한 주제를 꺼내고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지 나락 가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다양한 의견이 모두 존중받는 유토피아에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