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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경 Dec 02. 2024

나의 퇴사는 의미 있었을까#1

22년 11월~ 12월, 퇴사 직전까지의 이야기

나는 2023년 12월, 아이디어스(IDUS)라는 핸드메이드 쇼핑몰에 입점해, 레진아트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그 이전엔 오랜 기간 회사원이었는데, 퇴사 직전의 상황부터 아이디어스에 입점하기까지 8개월 간의 이야기를, 짧은 연재로 이어가 보려 한다.


(이 글은 '창업 성공기'나 '부를 이루는 법' 등의 글이 아니므로, 그런 것을 기대하신 분께는 미리 사과드린다.)


아이디어스는 한국에서 핸드메이드 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는, 국내에서 꽤 유명한 쇼핑 플랫폼이다.

입점을 위해서는 결과물과 제작 과정 영상 등으로 심사를 거쳐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디어스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은 나름 자부심이 대단했다. 불합격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던 나는 심사응모조차 망설이고 있다가, 인스타그램에서 오랜 기간 좋은 인연을 맺어 온 다른 작가 분과 연락이 닿았다. 아이디어스에는 '작가 추천'이란 제도가 있어서, 기존 작가로부터의 추천이 있는 경우, 좀 더 유리한 출발점에서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 혜택을 기꺼이 이용했고, 그렇게 지름길로 합격하게 되어 지금까지 아이디어스에서 활동해 오고 있다.


2023년 3월, 퇴사를 했다.

케미컬 원료를 수출입하는 작은 무역회사에서 근무한 지 막 10년 차가 되어가던 시점이었고, 퇴사 직전의 사유는 세 가지로 압축 가능했다.


1. 반복되는 생활에 미쳐 버리기 직전임

2. 개인적인 상황이 몹시 좋지 않음

3. 더 이상 남이 돈을 버는 것에 일조하고 싶지 않음


물론 퇴사 즈음 대외적으로 말하고 다니던 핑계들은 주로 2번이었다.

소중한 가족인 아버지와 반려묘에게 심각한 질병과 노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일과 가족을 모두 잡고 싶었다. 주 2-3일의 재택근무로 집에서 좀 더 시간을 가지면 베스트일 것 같아 회사에 제안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나는 대표님께서 직접 영업을 하시는 회사의 1인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대표님은 하나뿐인 직원이 카톡이나 전화가 아닌 사무실에 실존하길 원하셨다. 중요한 날에는 재택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수 있지만, 그걸 제도로 만들 수는 없다고 했다. 무리한 부탁인 걸 알고 있었기에 원망도 없었다.


회사를 다니며 취미로 시작한 레진아트



사실 개인사가 불거지기 이전 3-4달 전부터도, 퇴사에 대한 욕구는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출퇴근을 하거나 근무를 하는 시간에 새로운 계획이나 생각들이 한 두 조각씩 떠오르며, 머리 한쪽 구석부터 자리를 잡아갔다.

주로 퇴사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 썩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자신감인지) 자꾸만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올랐다. 오랜 꿈인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었고 , 브런치 작가가, 오디오북 유튜버가 되고 싶기도 했다. 처음엔 그중 두 가지는 꼭 잡아보겠다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세 가지 모두를 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 무엇을 하든 분야에서 최고점을 찍을 것만 같다는, 대책도 근거도 없는 자신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22년 11월, 존경하는 타투이스트 선생님께 찾아가 면접을 거쳐, 본격적으로 타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1-2년간 회사를 다니며 타투공부를 병행한 후, 서서히 퇴사를 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 무렵 나의 뇌 속에서는, "퇴사"라는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그 핑계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이미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10년간 근무하며 늘 있어왔던 대표님과의 작은 부딪침조차 과도하게 억울한 일이라 생각되었고, 작은 사무실 안에서 전화를 받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훌쩍 늙은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한없이 우울했다. 그럴 때면 그 이전에 무리하게 권고사직을 당할지도 모르며, 그런 불행이 발생하기 전에 한 살이라도 젊은 지금 스스로 퇴사해야 한다는 등... 머릿속의 목소리들은 쉴 새 없이 재잘댔다.


재미있는 건, 1년이나 취미로 유지해 온 레진아트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

취미는 취미일 뿐, 그걸로는 밥 벌어먹고 살 수 없다는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이곳에서 탈출하게 된다면, 내게는 무한한 자유와, 꽃길과, 영광 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상상했다. 영성이나 끌어당김, 갓생을 이루어 줄 서적들을 읽으며 미라클 모닝도 시작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긴 독서 노트를 작성 후, 출근 전 카페에서 타투 수업 숙제를 하곤 했다.

미라클 모닝은 나의 멘탈리티를, 약이 없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각성 상태(Natural high)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그렇게 한 달쯤을 지속하던 어느 날, 갑자기 냥이가 암수술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셨다. 이 결정적인 개인사들은 최고점까지 올라갔던 멘탈리티를 바닥까지 끌어내림과 동시에, 더욱 견고하고 완벽한 퇴사의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2022년 연말, 나는 대표님께 퇴직하고 싶다고 정식으로 말씀드렸다.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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