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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경 Dec 05. 2024

레진아트 작업일지#2  계엄과 작업의 관계성

국격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붕괴되어도 나는 판매를 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

이 국가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동네에서 국지전이 일어나 통신과 전기가 차단되거나 하지 않는 이상, 내 작업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래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주초에 마구 꿈틀거리던 창작 의지가 문을 걸어 잠가 버린 듯하다.


지난주, 크리스마스 바인더를 10개 가까이 판매했다.

나도 최선을 다했고, 고객들도 최선을 다해 원하는 제품을 골라 구매해 주셨다. 작품의 완성도가 예상보다 좋았고, 인스타그램 디엠으로도 계속 문의가 들어왔다.

창작부심이 샘솟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 생각이었다. 남는 시즌 재료가 많아서 모처럼 주문 제작도 2개나 받았다.



월요일 정오에는 택배를 잔뜩 보내고, 동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새롭게 매거진으로 연재할 <스틸녹스 탈출기>를 구상하며 목차를 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화요일엔 베프를 만나 강남에서 훠궈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아이돌 이야기를 했다. 기분 좋은 하루였다.

이틀 신나게 놀았으니 내일부터는 작업하고 글도 쓰고 해야지.. 감사하다 행복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맨 처음 든 생각은

“갑자기? 왜?…..??? “ 였다.


머릿속 가득한 물음표들이 양쪽 관자놀이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대통령 담화에 연이어 각종 유튜브에서 송출하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장을 찍는 라이브들을 계속 지켜보았다.

일상이 뒤틀리는 기분이었고 속이 메스꺼웠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


이후 나도 많은 이들처럼 불면의 밤을 보내며, 부디 누구 하나 다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아침이 되었다.

스스로 정한 휴일은 끝났고, 이제 작업을 시작해야 했지만 나는 작업 책상 앞에 앉을 수도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정부를 비웃고 조롱하고, 욕을 하고 화를 냈다. 아침이 되자 분위기는 조금씩 정리되었고, 이제 모든 게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겠지 했다.

어제 하루는 손수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먹고, 몇 시간 동안 전자기기를 끈 채로 청소도 했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길 원했다.

하지만 모든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시작할 수 없었고, 결국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 진짜 나 너무 무서웠다, 그지.... “


작게 흐느끼며 몇 번이나 되뇌었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아마도 겁에 질려 있었나 보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들은 몇 시간 이내로 철수했지만, 몇몇 장면들이 뇌리에 박혀 어쩌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오늘 국회로 왔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돌아가려 한다.


이번 작업 일지의 내용은 작업 공간을 깨끗이 청소한 것,

그리고 다음 작업을 위해 내 감정을 충분히 느껴주고, 다독여 준 것이다.


부디 다음 작업일지에는 새로 디자인한 바인더 사진들이 아기자기하게 채워져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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