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록하는 일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써 오고 있는 일기도 그 증거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도서관은 기록의 결정체다. 아무리 인터넷과 무형의 데이터들이 발달해도, 종이로 된 책을 읽는 행위는 데이터를 얻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켜켜이 쌓아 온 기록은 한 권의 책이 되고, 책은 도서관의 수억 개 세포로 이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출처: Pinterest
도서관을 사랑하게 된 삶
도서관은 가난한 사람들의 대학이다.
아무 도서관이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누구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서가에 다가가 책을 꺼내서 읽다 과감히 화장실도 이용하고 도서관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동안, "저기, 신분증 확인해야 해서요." "예약은 하시고 오셨어요?" 라고 누군가 말을 건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아주 작은 동네 도서관에 처음 들렀다가 "어서오세요. 책 구경하고 가세요." 라는 말을 들은 것 외에는, 경험적으로 아무도 나의 방문에 간섭하지 않았다.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동시에 도서관 방문자의 대부분은 지식을 향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조용하고, 어떠한 인생 배경에 상관없이 모두가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려 노력하고 있으며, 이 풍경을 지켜보고 있자면 가끔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도서관은 가난한 사람들의 대학이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정말로 나는 도서관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대학에서 시키는 학습보다 몇 배는 더 높은 지적 성취를 제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또한 안전하다. 치안이 나쁜 도서관은 아직 못 봤다. 나의 기분일 뿐이지만, 책이 있는 공간은 묘하게 그 공간을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쳐져 있는 듯 도서관은, 어디보다도 공공장소이면서 어디보다 안전하다.그래서 나는 도서관이 좋다.
더 세밀하게 생각해보면, 도서관이 주는 안정감을 좋아했던 것도 같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나에게는 꽤 낙원이었다. 도망친 곳은 늘 도서관이었으니. 시험 공부가 죽도록 하기 싫었던 중학생의 나도 도서관으로 도망을 쳤고, 첫 아르바이트에서 큰 상처를 받은 스무 살의 나도 도서관으로 도망쳤다. 도서관에 있으면 시험 공부도, 상사도, 일도, 그 무엇도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도망자의 삶에서, '도서관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는 '그냥 집에 있었다'든지, '미용실에 갔었다'보다도 설득력이 있어서, 나에게는 마치 무적의 주문처럼 들렸다.
다른 지역이나 다른 국가에 살게 되었을 때도, 방 안에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는 것과 동시에 그곳의 지역 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것은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나만의 '루틴'이 되는 것이다. 아무튼 도서관 회원증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나는 외지인에서 내지인이 된 듯 최초로 소속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저, 여기 도서관 회원이에요!"
영국 런던의 Westminster home library로 추정되는, 내가 급히 방문한 도서관
도서관은 때론 구원자의 역할도 한다. 단골 은신처로, 독서로 구원받은 것과 별개로 말이다.
웃긴 얘기지만. 언젠가 혼자 영국을 여행했을 때 도서관이 마치 빛처럼 나를 살려준 적이 있다. 애비 로드의 드넓은 주택가를 걸어다니다 빠져나올 수 없어 갇혔다시피 했던 어느 초저녁이었다. 갑자기 화장실이 매우 급해져 한 걸음 떼는 것조차 버겁만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심지어 주변에는 어떠한 상점도 없이 정말로 걸어도 걸어도 주택밖에 없었다(!). 아무 집이나 초인종을 눌러 들어가려고 정말 진지하게 마음을 먹은 찰나, 머릿속을 스쳐간 것이 '도서관'이었다. 동네에 도서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정말 다행히 작은 도서관이 주택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외국인이 방문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안되는 그런 동네 도서관에 들어가, 필사적으로 화장실 마크를 찾고 해결을 보았다. 말 그대로 이런 게 구원받았다는 기분일까? 화장실용으로 방문해서 미안할 따름이지만 말이다.
화장실에서 나와 급히 찍어 본 실내 풍경
앞으로 도서관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을 삶들에게
지금 도쿄에 살고 있으니, 도쿄의 도서관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도서관이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각각의 도서관은 분명히 개성있게 살아있다. 내가 사랑하는 공공장소, 도서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