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미국 고모(USA Aunt)
119. 미국 고모(USA Aunt)
결혼하기 전까지 작지만 친척들이 모여 차례와 제사를 지내던 풍습이 있었던 집안문화에 1년에 한번 추석 또는 설날에는 찾아오는 미국에서 오신 먼 친척이 있었다. 세련된 옷차림에 예쁘게 화장을 하시고, 해외에서 사오신 비싼 와인 등을 들고 오시며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 보셨고, 우리 할머니에게는 작은 엄마라고 하며 살갑게 대화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미국에서 오신 사촌 고모님 이시다. 당시 이국적인 분위기에 미국에서 귀한 발걸음을 하시며 한국에 오시는 손님 맞이에 우리는 살짝 긴장과 설레임을 갖고 기다렸으며, 밝고 명랑하신 웃음 소리에 모두들 화목하게 대화 하곤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았고, 기회가 되어 그 사촌 고모님을 만나는 날이 찾아왔다.
왠지 모를 잔뜩 부푼 기대와 그간 나의 미국생활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어떻게 지내셨는지 그리고 더 좋은 말씀은 있으신지 경청하고자 했다. 그렇게 사촌 고모님의 아들 집에서 만남이 이루어 졌고 나는 조금 이상함을 감지했다. “미국생활 재밌어?” 그리고 잠시 뒤 또 한번 “미국생활 재밌어?” 그렇게 같은 질문을 10번정도 반복하셨고 나 역시 수차례 정성스레 대답을 했다. 그분은 84세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여러 번 물어보는 질문에 나는 짜증보다 더욱더 열심히 그분의 나의 대답을 들으며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대화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나와 고모는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다. 어렸을 적 보았던 잘나가던 부잣집 사모님의 세련미 넘치고 부티나며 미래를 내다 보는 듯한 말투는 온데 가데 없고 떠나가는 우리 모습을 아쉬워 하는 전형적인 부모님의 그리운 모습 같았다. 미국에서 아주 잘 적응하셔서 영어도 유창하시고, 미국 할머니들과 함께 즐기며 시니어 센터에서 계실 것 같았는데, 정 반대로 영어는 안하시고 양식보다 한식을 더 찾으시고 코리아 타운을 아주 잘 다니셨으며, 딸과 함께 집에서 홀로 보내고 계셨고 결국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남은 생을 잘 마무리 하시겠다고 하셨다. 자식들은 모두 다 잘되어 미국에서 정착하게 만들고 정작 본인은 그리운 고향 한국으로 다시 가시겠다는 모습에 수십 년간 고단하시고 위대한 삶에 정말 존경 할 수 밖에 없었다. 1975년 미국에 오셔서 지금까지 다양한 삶을 지내오셨겠지만 결국은 한국으로 돌아가 15평 오피스텔에 자식들 도움 없이 노인요양 보호사와 함께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는 사촌 고모님의 말씀에 노년의 인생도 결국자신의 의지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과 가슴 쓰린 아쉬움이 남았다.
2/3/2025 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