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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기-127. 외삼촌( Uncle)

127. 외삼촌( Uncle)

by nice guy황준영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외삼촌은 어떤 존재 인가요? 라고 물어 본다면,, 나에게 정말 한 없이 웃으며 이뻐해주셨던 기억 밖에 없던 막내 외삼촌이 있었다고 말하고싶다. 전라남도 나주 시골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집앞에 있는 럭키 공장을 다니셨고, 너무 너무 착한 효자이며, 형제들에게 언제나 사랑 주고 받는 모날것없는 형제 였으며, 성실함은 빠질 것 없이 온 동네가 다 알아주는 일꾼 이셨고, 39살 늦은 나이에 늦깍이 결혼을 하시고 아직도 평생 태어나고 자란 시골에서 계속 삶의 터전을 일궈 오셨다. 내가 10살 무렵 삼촌이 총각시절 언제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셨고 아직도 삼촌의 알통과 가슴근육을 잊을 수가 없다. 항상 온화한 미소로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 주셨고 무엇이든 잘하고 있다고 그저 내 얼굴만 보면 좋아하시던 삼촌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평생 술은 입에 닿지도 않으셨고 지금은 돌아가셨만 외할머니와 둘이 살면서도 동네에서 소문난 효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냥 우리 삼촌은 아주 아주 착하디 착한 남자 인간 이었다. 이제 그런 삼촌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꾸지람 보다는 칭찬을, 장난 보다는 따뜻한 말씀을, 가끔 보아도 낮설지 않게 안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외삼촌 같다. 어렸을적 너무 힘세게 보이던 외삼촌들은 이제 70살을 넘어 8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고, 빠른 걸음 보다 등이 굽어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며 시간을 잊은채 언제나 10대에 시절 삼촌을 동경하며 모든 다해주시던 삼촌이었다.

여동생의 자식,,,,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나도 사촌 여동생이 있지만,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기회가 되면 무엇이든 잘 해주고 싶지만, 항상 시간과 장소가 충분하지 않아 한번 만날 때 최대한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 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고 장난기 많고 정신 못 차리고 자리 못잡아 방황하는 삼촌들도 있겠지만 표현 방식 일뿐 그들의 마음도 한결 같이 동생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시골에 가면 삼촌 하고 부르면 마중 나올 것 같은 삼촌인데 아쉽다. 내 주위에 점점 없어져 가는 친척들을 보면서 슬프면서도 지나 추억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막내 외삼촌은 좀 더 지내다 가셔도 되는데 얼마나 힘드셨으면 준비 없이 일찍 가셨을까 하는 마음에 슬펐다. 그래도 엄마가 본 마지막 삼촌의 모습은 그 선하고 인자하신 표정으로 눈을 감으셨다는 말에 마지막 삼촌의 얼굴을 기억 할 수 있었다.

5/31/202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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