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

by 꿈담은나현


마감이 끝난 카페는 사람보다 흔적이 더 오래 남는다. 다 마시지 못한 커피잔, 반쯤 찢긴 설탕 봉지, 접힌 쪽지 한 장. 민호는 익숙한 동작으로 의자를 테이블 위에 올리면서도 그런 것들에 자꾸 눈이 간다. 손님들의 얼굴은 쉽게 잊히지만, 자취는 마음에 남는다. 고요한 밤의 카페는 오늘 하루의 마지막 장면을 천천히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마감 시간에 맞춰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컵을 헹구는 손, 바닥을 닦는 허리, 계산대를 정리하는 손끝. 손목엔 지워지지 않은 커피 얼룩이 남아 있고, 발엔 오래 서 있던 피로가 눌어붙어 있다. 피곤함은 매일 같지만, 오늘은 어딘가 다르게 무거웠다. 그 피로가 단지 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서울에 올라올 땐 별이 되고 싶었다. 무대는 찬란했고, 조명 아래 서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추는 것 같았다. 대학 시절 단막극에 올랐을 때, 첫 대사를 꺼내기 전의 숨죽인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땀이 흐르던 등줄기, 조명이 스치던 이마, 객석에서 퍼지던 미세한 숨소리. 그는 그 찰나의 감각을 잊지 못한다.


그는 더 높은 무대를 상상하곤 했다. 진홍빛 막이 오르고, 수많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반짝이는 조명이 쏟아지는 순간. 먼지가 떠다니는 공기마저 금빛으로 빛나고, 숨소리조차 연기로 바뀌는 무대. 그는 그 한가운데 서고 싶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거기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무대는 좁았고, 틈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형광등 아래 들리는 구두 소리, 번호표가 잔뜩 붙은 벽,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 심사 위원들이 있었다. 그는 늘 마지막 순번이었고, 민호라는 이름은 너무 흔해 금세 뒤로 밀렸다. 오디션 보고 난 이후에는 늘 같은 말이 돌아왔다. “연락드릴게요.”라는 말은 정중한 작별 인사에 가까웠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그렇게 사라진 자리를 대신 채웠다.


그럼에도 그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옥탑방의 얇은 벽 너머로 바람 소리가 들릴 때면, 그는 창문을 닫고 입을 가린 채 낮은 목소리로 발성을 반복했다. 대사 한 줄을 입안에 굴리듯 수없이 뱉었다가 삼키고, 다시 뱉었다.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톤이었지만, 그 안에 감정을 실었다. 밤이면 옥상에 올라 별을 올려다보며, 그는 입술 안쪽으로 또 다른 대사를 되뇌었다. 연극은 희망이 아니라, 자신을 지우지 않기 위한 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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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담은나현, 따뜻한 이야기를 담는 사람/ 소소한 순간을 기록하며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전합니다. 글이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온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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