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다 풀었지만, 나는 아직 그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현관 옆에 조용히 놓인 캐리어는 내가 이미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느슨하게 풀린 끈, 반쯤 열린 지퍼, 아직 바람을 품은 듯한 바퀴의 결. 나는 모든 짐을 다 꺼냈고, 다시 일상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가방만은 그날 이후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거기만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앞에 멈춰 선 순간,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도 정말 다녀온 걸까.
세탁기는 돌아가고, 원래 자리에 걸린 옷들은 여행을 스쳐 간 냄새를 털어냈다. 냉장고에는 장을 본 흔적이, 책상 위에는 펼쳐진 업무 메모가, 집이라는 공간의 체온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그러나 캐리어 속에는 아직 여행 온도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영수증, 꺼내지 못한 코코넛 비누. 바람이 통하지 않는 안쪽 깊은 곳에서 나는 다시 그곳의 햇빛을 떠올렸다.
창문을 열었을 때, 방 안을 스치는 바람이 낯설게 느껴졌다. 바람 속에는 짧은 순간 마주친 사람들의 온기가 섞여 있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던 말이 기척처럼 스쳐 지나갔다. 편의점 앞에서 나를 보고 웃던 아이, 택시 안에서 건넸던 어설픈 인사. 말은 엉성했지만, 미소는 단정했다. 언어가 아니라 감정이 먼저 건너간 순간들. 짧고 조용한 교류가 내게는 참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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