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웁다 #5
지금 나는
내 생의 어느 골목길에 들어섰다.
이곳은 어디일까.
이리저리 굽고 휜 골목길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살아갈 숱한 날들 속에서
지금의 이 짧은 순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대개의 모든 일들은
지나가 버리고 나면
그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도 무디어지고
아픈 상처도 흉터만 남긴 채
기억을 덧칠해 버리니까.
그래서 어쩜 지금 나의 선택이
훨씬 쉬웠는지 모른다.
쉬웠다....
하긴 이 표현은
현재의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가볍고 너무도 얄팍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다.
가족을 위해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혹은 이 사회와 나라를 위해서라는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결국 그 모든 귀결점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거.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나 역시 나를 위해서,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내 생의 중요한 선택을 했다.
더 이상 아파하지도, 괴로워하지도,
미쳐버리지도 않기 위해서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나는 이제 홀로 걸어갈 것이다.
H의 손을 잡고, W를 둘러업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길을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걸어갈 것이다.
H와 W가 나의 곁에 있기에
혼자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직은 내가
이 작은 우주들을 책임져야 하므로....
많이도 벅차고 힘들 수 있겠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아이들도 나의 손을 잡지 않고
자기들 힘으로 자신들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저 아이들에게 잠시 동안,
아주 잠시 동안 길안내를 맡을 것이다.
안내자가 현명해야만
걷는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잠시 걱정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이 역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부모님이 나를 이끌어주신 것처럼,
그렇게 조심스럽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아 끈다면
나 역시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안내자가 될 수 있겠지.
다만 앞으로 나는 많이 외로울 거다.
지나간 나쁜 기억조차도 그리울 만큼
많이 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서른 일곱 해를 맞이하는 동안
이제 스스로 혼자 일어서는 것쯤은
익숙하게 터득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지나친 우려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
이 정도면 이제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별로 슬퍼할 일은 없다.
그래서 괜찮다.
탁! 하고 내 어깨를 싱겁게 두드려 준다.
그래! 그래! 할 수 있어.
2008. 2. 6.
2026. 2. 27.
골목길은 아기자기하고 이쁘다.
하지만 그 길도
밤이 되어 누군가에게
쫓기는 장소가 되면
공포의 현장이 되고 말지.
아마도 저 시절,
내가 갇혀 있던 골목길은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큰 나무 아래 서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생각 중이다.
저 큰 나무를 두 팔 벌려 안을까
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가 볼까
나무와 나란히 서서
저녁놀을 바라볼까.
셋 다 해볼 수도 있지.
셋 다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제는 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내가 무엇을 하든
그건 나의 선택이고.
그래서 나는 좋다.
가뿐하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