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살기 위해서

아이를 품다 #47

by 채온



나는 지나치게 바보스러운 것일까.

나름 똑똑하고 야무지다고 여기고 살아왔는데,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를 범했다.

내 인생의 방향키를 잘못 돌린 대가는

길고도 힘들게 나를 괴롭힌다.


어제는 변호사 사무실에 이혼소송을 의뢰하고 왔다.

이번 주 안으로 소송서류가 접수될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움을 시작한다.

그것이 얼마나 피 튀기는 혈전이 될지,

심장을 도려내는 고문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내가 이 싸움을 시작하는 이유는

내가 살기 위해서이다.

엄마로 살기 위해서이다.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을

사람답게 키우며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사를 하자마자

나의 집은(여기서 정확히 얼마라고 밝힐 수 없지만)

가압류가 되었다.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지만

생각해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솔직히 여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와 내가 떨어져 지내는 동안,

각자 자연스럽게 마음의 정리가 될 줄 알았다.


한 번씩 이성적인 태도로 그가 나를 찾아서는

앞으로의 문제에 대해서 말을 툭 던졌다.

그는 헤어지면 아버지의 역할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양육비도 줄 수 없으니

집이라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우라고 했다.


그것이 나름의 경고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모든 것을 감당하고라도 아이들을 책임지고 싶다고

나의 의사를 밝혔다.


어쩌면 흔들림 없는 나의 태도가

그를 더욱 분노하게 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 앞에서는 태연했지만

돌아가서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던 걸까.


끝까지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던 것은

이 결혼의 파탄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H는 요즘 한참 많이 운다.

왜 이렇게 우는 걸까.

매번 짜증 내고, 울고, 변덕 부리고, 또 울고....


머리 아픈 나는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만다.

왜 이러니 정말. 엄마 미치게 만들고 싶니.....

그러고 결국 내가 울어버리고 싶다.


H야. 넌 지금 아무것도 모르지만...

엄마를 좀 도와줘.

엄마가 굳세게 너와 W를 지킬 수 있도록 좀 도와줘.

엄마가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줘.



2008. 11. 28.



2026. 5. 4.


블로그를 쓴 지 거의 일 년 만에

이혼 소송에 돌입했다.

이혼 생각을 하고, 마음을 다지고,

집을 나오고, 그를 피해 있는 동안

별거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지만.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지금이야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저 시절의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내 삶과 한참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나를 넘어뜨리려는 나의 삶과

샅바를 잡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버텼다.


기술을 쓸 줄 모르는 나는 언제나

정면 승부를 한다.

융통성 없고, 앞뒤 꽉 막혀서

곧이곧대로만 한다.


늘 상대가 하는 말을 문맥 그대로 믿는다.

그러다 항상 뒤통수를 맞고 말지만.

그래도 난 항상 최소한의

인간의 선량함을 믿는 쪽에 손을 든다.

그것이 나였다.


저 때 나의 적금 통장에는 5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고스란히 이혼 소송에 넣었다.

법원 앞 지하철 입구에 서서

통장을 들고 심호흡을 하던 내가 보인다.

나의 어깨에는 두 아이가 있었다.


변호사가 말했다.

서울은 이혼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최장 2년은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혼할 사람들이 줄을 섰거든요.


그 줄에 나도 섰다.

앞과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게 사람 할 짓이 아니라는

주변의 말들이 공포스러웠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내게는 두 아이가 있으니까.


소장을 쓰고 돌아와서

어린이집에 H를 데리러 갔다.

말은 안 했지만, 얼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나는 울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햇살처럼 웃는 아들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죄스러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싸움은 시작되었다.

피가 마르고 잠 못 이루는

긴 밤의 시작이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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