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44
미운 네 살이라고 하였는가.
유난히 요즘따라 H가 말을 듣지 않는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쩌면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어느 때는 부드럽게도 받아들이다가도,
어느 때에는 과민반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아직은 자기 생각과 주관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은 하곤 한다.
그래서 버럭 화를 내고 나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가 하는
자문을 이따금씩 하게 된다.
나도 엄마의 간섭이나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배려를 하기에는
아직 너무 나이가 어리지 않느냐고,
그 조그만 것이 무슨 생각이나 하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가장 손쉽게 하는 착각이
바로 그런 것이란다.
어린것이 무얼 알겠느냐고.
아이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자기만의 고집과 생각을 가지고 있단다.
어리고 작지만 하나의 인격체인 것이다.
그 어리고 작은 인격체를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 역시 그 나이 때는
그런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기에,
아이의 생각을 아주 쉽게 생각해 버리는
잘못을 범하는지도 모른다.
매일같이 아들이랑 싸운다.
혼내고, 울고, 반항하고....
그래서 요즘따라
혼자서 아이 키우는 일이
참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랑 나누어서 하면
좀 더 수월할까 생각해 보지만,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내가 엄마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보육자가 둘이든 셋이든,
그런 숫자는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하다.
갑자기 예상치도 못하게
아이가 일을 저지르거나,
뻔히 몇 번씩이나 주의를 주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의 말을 무시하고
금기된 일을 범하고 말면,
순간적으로 화가 난다.
'야! 너 왜 그래?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다.
그래도 별다른 행동의 변화가 없을 경우,
매도 들게 되고, 꿇어 앉혀 손도 들게 한다.
한바탕 화를 내고, 혼도 내고,
아들이 소파에 시무룩히 앉아 있다.
나는 씩씩거리며, 설거지를 하고 있다.
잠시 후, 아들이 내 곁으로 와
두 손바닥을 마주 대고 빈다.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할게요.'
'그래, 앞으로 그러지 마.'
보통 이런 대화가 오고 간 뒤,
H는 히죽 웃으면서 나에게 안기거나,
다시 자기가 놀던 자리로 돌아가
자신만의 세상에서 논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근데, 엄마도 나한테 미안하다 해야지."
"?"
"왜? 왜 엄마가 미안하다 해야 되는데?"
"자꾸 엄마가 나보고 '야! 야! 그럴 거야?'하고 소리 질렀잖아."
"!!!"
"야! 야! 하고 소리 지르면 안 되지."
"....!!!!...."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자기에게는 이런 말, 저런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서
정작 엄마는 자신에게,
H야~도 아니고, 야!라고 부른 것이
참으로 기분 나쁘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불러서 좋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부르면서
소리 지르고 화를 냈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음....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정말, 그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래. 그러고 보니 정말 엄마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네.
화가 났어도 너를 '야!'라고
그렇게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렇게 높은 목소리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서도 안 되는 것이네.
"그래, 엄마가 잘못했네, 미안해."
"미안하지!"
"응, 미안해. 엄마도 야! 하고 소리 안 지를게."
그제야 H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만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아... 정말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들다.
아니, 부모 되기 너무 힘들다.
내 안의 나가 아직 성숙된 부모가 되지 못했는데,
이렇게 부모 노릇을 하고 있으니,
정말 오류가 너무 많구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다.
H의 오늘 행동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H도 자신의 생각과 인격이 있는 존재라는 걸
내게 너무도 뚜렷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또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지도 가르쳐준다.
한편으로는 아들놈이 무섭기도 하다.
지금도 저러한데,
나중에는 또 나의 잘못을 얼마나 꼬집어 줄 것인가.
한바탕 난리 덕분에 나는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고,
또 아들이 친구 같아 즐겁기도 했고,
'미안하다' 이 말을 해야 할 때는
할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능한
미안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도록
이쁜 말, 좋은 말만 하는,
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
2008. 11. 3.
2026. 4. 27.
그동안 살아오면서
H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내가 힘들면, 짜증 나면
서로가 많이 부딪쳤다.
그건 H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가 닮은 만큼
서로에게 많은 걸 요구했다.
너는 엄마를 이해해 줘야지.
엄마면 나를 이해해 줘야죠.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에
서로에게 더 상처되는 말도 했다.
가끔은 내가 누구랑 싸우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아들인데, 나를 쏙 빼닮은 아이인데
내가 왜 아들과 이러고 있나
아무리 사춘기라지만
갱년기 엄마랑 부딪치는 자식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더 큰 그릇을 가져야 하는 건 나였다.
그래도 더 감싸 안아야 하는 건 엄마였다.
그래서 못났지만, 부족한 엄마지만
꼭꼭 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엄마가 늘 미안해.
조금만 더 널 이해해야 했었는데....
H도 늘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진심은 그렇지 않은데
늘 삐딱선을 타려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거
엄마도 알고 자신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꼭 사과를 했다.
상처 주는 말과 행동에 대해서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밤새 서로 마음을 터놓고 오해를 풀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 마치
기적처럼 서로가 편해지는 순간이 왔다.
무엇을 해도 이제는 웃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러워졌다.
엄마에 대한 이해도 편안해져 버렸다.
가끔은 생각한다.
혼자 살면서 혼자 궁리하고
혼자 판단하고 혼자 해결하느라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미안하다.
끊임없이 해도 모자랄 것 같은 말.
실은 두 아이에게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처음부터 엄마는 너희들에게 미안했고
살아오면서도 줄곧 계속 너희들에게 미안했지.
앞으로는 미안할 일은 만들지 않겠다
그렇게 맹세하고 싶은데....
잘될지 모르겠으나 현재로서는
엄마는 그냥 자꾸 돌아보게 된다.
여러 가지로 미안했다.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