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43
출근길에 읽은 책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를 낳아본 여성의 살아 있는 목소리.
그녀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만 듣고서
병원 분만대에서 칼을 대고
아이를 낳은 것을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두려움과 공포.
그것을 넘어서
뱃속의 아이와 함께 신뢰를 쌓아가며
열심히 노력하여 집에서 자연분만을 하는
엄마들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노라는 이야기.
그리고 이미 세상을 나올 때
한 부분이 엉클어진 아이를
어떻게 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 하며
자신의 몸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며
참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드러내었다.
왠지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난다.
나에게 남아 있는 두 번의 출산의 기억.
사랑하는 H와 W에게
내가 준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누구나 엄마들은 자신의 생사를 걸고
아이를 낳게 된다.
새로운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기 위해
그녀들은 자신의 삶과 생명과
끊임없는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 처절한 사투를 바라보는 남편들도
함께하려 노력하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 사투 속에서 어이없이 아이나, 엄마나,
혹은 두 생명 다 모두 사그라드는 경우도 허다하니,
그 치열함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H를 낳을 때, 아마도 어쩌면
나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꼬박 하루를 진통하고도
병원문을 두드렸으나
아이는 좀처럼 아래로 내려올 줄 몰랐다.
18시간의 사투.
그것은 그야말로 사투였다.
병원에 가기 전 이미 양수는 터져버렸고,
태아가 참으로 힘들어했다.
아이를 살리려면
어쩌면 수술대로 갔어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아기가 무사히 나와 줄 것이라고.
내가 열 달 내내 함께 이야기하며,
함께 운동하고, 약속했던 그 모든 것들을 되새기면서
아기가 힘들어도 이 상황을 견뎌줄 것이라고....
'산모가 너무 위험해요.'
의사 선생님은 보호자들에게
이 말을 몇 번씩이나 했다지만,
내게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저, 힘내라고, 여기서 주저앉을 거냐고,
아이와 산모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그렇게 격려해 줬을 뿐이다.
나는 그 의사 선생님을
지금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에게 수술을 직접적으로 요구했더라면,
맥을 놓고 쓰러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그런 모든 상황을 견뎌내고
아기를 낳았다.
출러덩 미끄러지는 느낌과 함께
아이가 나온 그 감각은
아마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나는 눈을 뜨지도, 울지도 못하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꺼져가는 의식을 붙들며
정신 차려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하는 동안,
아기의 몸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
그 순간의 아득함이란.....
나는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아이를 보고 싶었지만,
이미 아이는 신생아실로 옮겨져 버려서
볼 수가 없었다.
눈물조차 흘릴 수 없을 만큼
탈진했었던 나는 무슨 일이냐고
누구에게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내가 묻기 전에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겨우 입모양으로 물을 수 있었던 내게,
남편도 외사촌 언니도 괜찮다, 괜찮다만 연발할 뿐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날 밤 병실에서 나는 잠 못 이루고, 울기만 했다.
무서웠다.
진정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건 아닐까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W를 낳을 때, 나는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두 번째라 별다른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때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나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남편과의 상태가 좋지 않았으므로
마음은 한없이 우울했고,
몸은 심한 여름 감기로 인해 쇠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과연 분만 시에
기운을 낼 수 있을지조차도 의문이었다.
역시 아이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게다가 H보다 무려 900그램 가까이 큰 아이였다.
H가 태어났을 때 아팠기 때문에,
나는 W만큼은 건강하게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
토하면서도 먹고 다시 토하고 먹고를 반복하며
아이에게 많은 영양분을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2.7kg의 아기를 낳을 때조차도
생사를 걸어야 했던 내가
3.58kg의 아이를 낳는다는 건
또다시 생사의 길을
오락가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두 번째의 출산은 첫 번째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결국 또 산모와 아이가 위험해짐을 의미한다.
W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역시 병원에 오기 전에 양수가 터져 버렸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자꾸만 양수가 새어버리는 까닭에,
아이의 상태가 또 힘들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자신만만했다.
한 번 경험이 있는데, 또 못할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마음 또한 처음과 같지 않았다.
분만실에서 회음부 절개까지 했지만
아이의 머리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결정했다.
나는 진통과 절개의 고통 속에서
수술에 동의를 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병실이었다.
역시 아이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엉엉 울기 시작했다.
W를 스스로 낳아주지 못한 자책감이, 미안함이
그토록 나를 울게 했나 보다.
아이가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쉽사리 그치지 않던 울음.
왜 내가 그토록 우는 것인지
간호사들은 의문을 가졌지만,
아무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었으리라.
나는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자연분만을 했는데도
H를 아프게 세상과 만나게 했고,
제왕절개를 선택하여
W에게 건강한 몸을 주었지만
엄마 힘으로, 아기의 힘으로
세상과 만나는 것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아... 두 아이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두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준 방식이
얼마나 아픈 것이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엄마의 마음은 눈물로 가득 젖어 버린다.
2008. 10. 21.
2026. 4. 24.
여자에겐 그런가 보다.
출산의 순간과 장면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런 면에서
두 아이 모두 바로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은
내게는 뼈아픈 기억이다.
옛날이었다면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낳지도 못하고 죽은 여자였겠지.
의료 기술이 좋은 시절에 태어나
다행히 아이나 나나 목숨을 건졌고
아이는 수술을 받아 살았다.
그런 면에서
큰아들에게 말했다.
너를 살려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해라.
나 역시 늘 되새긴다.
아기를 낳게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
노래 가사에 이런 말이 있었다.
우연히 눈을 떠 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었고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존재는 없지만,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목숨을 건 행위 아래 가까스로 눈을 떴다.
우연히 눈을 뜬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처절한 생사의 현장을
우연이라는 말로 덮을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나를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주셨다.
여자로 태어나서 가장 감사했던 일은
내게 한 번쯤은 그렇게 목숨 걸고
새로운 우주를 만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 두 우주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인생은 참 신비로운 수수께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