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42
새벽같이 일어나야지 했으면서도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7시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스트레칭을 좀 하고
헬스자전거를 20분가량 탔다.
몸이 둔해진 것일까.
예전에는 힘들지 않았는데,
겨우 20분을 탔을 뿐인데도
허벅지가 팽팽해졌다.
그래... 운동 부족이야.
한동안 단잠에만 너무 탐닉했었다.
머리를 감고,
헤어드라이로 머리칼을 말리고,
아침 상을 차리는 동안
흘끔흘끔 침실을 들여다보았지만,
H가 좀처럼 일어날 줄을 모른다.
새벽녘에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어가며
선잠을 자는 듯하더니,
그리고 나에게 안아달라고 보채더니
늦도록 일어나지를 못한다.
간신히 일어나는 H.
아이의 기지개를 보면서
나는 그 통통한 발을
부드럽게 깨물어 주었다.
두 손으로 온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 뽀뽀!
뽀뽀하자고 부탁했더니,
가볍게 외면하는 놈.
녀석의 볼에 한가득 뽀뽀를 해준다.
일어나자마자 대뜸 하는 말이,
'엄마, 밥 줘!'
엄마. 밥.
지금 나이의 아들에게는
'엄마=밥'이라는 등식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어제저녁,
어린이집에서 H를 데리고 나오는 길.
H가 내게 물었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응, 학교 갔다 왔지.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병원에도 다녀왔어."
"학교 갔다 왔어? 공부 열심히 했어?"
"... 그래, 공부 열심히 했어."
"정말 열심히 했어?"
"그래, 이눔아. 잔소리 좀 그만해. 열심히 했다니까..."(뜨끔)
"병원에서는 뭐 했어?"
"주사 맞고 왔지.(사실은 침 맞았다)"
"나는 주사 안 맞을 건데..."
"그래, H는 주사 맞을 일 없어."
오늘도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길에
H가 내게 한마디 했다.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해.
그리고 밤에 H 데리러 와."
어이쿠!
요즘따라 H는 내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뭘 아는 것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친다.
저 잔소리를 언젠가는
내가 H에게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적어도 그런 말은 안 하고 싶은데...
네 살짜리 아들은 벌써 내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타이른다.
요즘따라 게으른 엄마를 일깨워주는 것인지....
아이의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이 참 듣기 좋다.
나중에 혹 내가 그 말을 하더라도
아이가 기분 좋게 들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한 마디 던졌다.
'사랑 없이도 먹고살 수 있습니까?'
나는 시큰둥하게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먹고사는 문제에 사랑은 별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나는 너무 많이 세상에 시달린 것일까.
너무 늙어버린 것일까.
정말. 사랑과 먹고사는 것은 다르다. 지금으로서는.....
그리고 늘 하는 말이지만.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만 사랑은 아니니까.
2008. 10. 17.
#같은 날의 댓글
엄마는 공부 열심히 할 건데,
H도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공부 열심히 해.
내가 말했더니 H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텔레비전 볼 거야.
텔레비전에서 영화 볼 건데....
공부는 엄마가 열심히 해.
2026. 4. 21.
H는 확실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반장도 도맡아 하면서
제법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공부만 하기에는
너무 자잘한 끼가 많았다.
요즘말로 치면 관종이었다.
누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지
누가 자신을 유심히 보는지
무엇을 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어떤 말을 하면 반응이 높은지
그런 것에 예민했다.
때때로 생각했다.
편모의 환경이 저 애에게 결핍을 주었는가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갈망하는
저 반짝이는 눈은 무엇을 찾아 헤매는지.
솔직히 저 아이의 관종 끼는
8~9할은 내 책임이다.
내가 들려준 무수한 음악들이
내가 보여준 숱한 영화들이
우리가 함께 나눈 감성과
밤을 새운 토론과 이야기들이
저 아이를 누구보다 예민한 결로 만들었다.
엄마. 모범생으로 사는 것은
정말 재미가 없어요.
공부만 하는 애들은 정말 말이 안 통해.
H가 그렇게 말할 때,
W는 코웃음을 쳤다.
그 애들한테 형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꼴통에 관종이야.
W가 말했다.
자기도 공부만 하는 따분한 애는
되고 싶지 않은데
형을 보면, 형처럼 살기는 싫단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H는 자신의 삶을 즐긴다.
이번에도 휴가 내내
자신이 기획한 공연을 열심히 잘 치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아이는
얼굴에 빛이 난다.
내가 보기에 W 역시 관종이다.
하고 싶은 욕구가 내면에 득실득실하다.
책상물림으로 사는 것도
잘할 수 있는 아이다.
하지만 자기 멋을 부리는 것도 가능한 아이.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눌러왔다.
형과 엄마의 지난한 충돌의 과정을 보아온 W는
(형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 대충돌.
그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힘들었다.)
그만 학을 떼고 말았다.
그래서 조용히 책상물림의 삶을 선택했다.
형이든 엄마든 누구도 자신을 건들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들은 모른다. 내가 무엇을 준비하는지.
H는 멀리 머얼리 날려 보낼 생각이다.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방출하며 살 수 있도록.
다시 나에게 날아오지 않아도
날갯짓을 멈추지 않도록 훨훨 날려 보내리라.
W는 아마 어느 순간 터질 것이다.
그 아이 안에 고여 있는 무언가가
터질 날이 멀지 않았다.
나는 두 손바닥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무엇을 토해내든
등을 도닥여 주고 입가를 닦아주리라.
W가 무엇을 선택하든 받아들일 것이다.
관종의 길을 선택하든
책상물림의 삶을 선택하든
혹은 또 다른 길을 선택하든
그것이 W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 된다.
H처럼 W의 눈에도 빛이 깃들기를,
두 아이가 모두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엄마는 준비하고 있다.
이후는 모두 감당해 내야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