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아이를 품다 #6

by 채온


몇 년 전에 한참 인기를 끌었던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이'에서 금순이의 둘째 시숙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항의하는 한 대목이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


유난히 몸이 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어머니는

큰 아들 하나만 키우는 것도 벅차서

결국은 둘째 아들을 친정집으로 내려보내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하였다.

그것이 장성한 아들의 기억 속에서도

크게 서럽고 아팠던 대목이었던지,

‘엄마는 왜 형만 위하고, 나는 그렇게

엄마 사랑도 품 안에서 받지 못하게 키웠냐'

외쳐대며 눈물바람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또 하나 떠올리는 이야기.

대학시절 나와 가장 절친했던 친구 Y는

친언니 때문에 어릴 때부터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고

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언니가 어릴 때부터 아프고,

백혈병인지(지금 병명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뭔지 어떤 병을 앓으면서

늘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부모님의 관심이 온통 언니에게만 쏠려 있어서

자신은 그다지 유년의 삶이

그렇게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사춘기 때는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고,

여러 가지로 자신을 힘들게 하였다고

언젠가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나는 딸 하나로 아들 흔한 집안에서

온통 사랑을 독차지하고 산 터라,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유난히 마음이 약해지고,

그들에게 내가 가진 사랑을 무진장 퍼주리라 생각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이다.


덕분에 사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남자를

남편으로 선택하는

삶의 가장 큰 오류를 범하고 말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올바른 방식으로 다른 이를 사랑할 줄 모른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새어버렸는데.



이 두 가지 기억은 이제 내게 현실로 다가와 있다.


나는 항상 그 부분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나의 둘째 W를 바라본다.


H를 부산 친정에서 낳으면서

4개월간 친정에서 생활하였고,

일을 시작하면서 두 달을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서울에서 부산을 주말마다 오가면서

얼마나 나의 살점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두 달 만에 서울에서 H를 안고 잠들 수 있었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릿아릿하다.


그리하여 둘째를 가지면서 나는 반드시 둘째만큼은

내 손으로 완벽하게 키우리라 다짐하였다.

일부러 부산출산행도 마다하고

부른 배를 안고 일을 하면서

서울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결국 60여 일을 나와 함께 보내고

눈물과 함께 부산 친정으로 내려보내야만 했다.

너무 갓난아기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는

어미의 마음이었다.

낳기 전에는 남에게 맡기더라도

일을 나가야지 하는 심산이었는데,

결국은 이른 새벽부터 아기를 봐줄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일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둘째 아이를 친정에 두고 올라온 날,

텅 빈 안방 침대를 보면서

그만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첫째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침대 주변을 맴돌면서

‘애기, 애기 없어' '애기 없어' 말만 반복하였다.


일주일 내내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바보처럼 멍해진 자신을 추슬렀다.

불어오는 젖을 짜내서 냉동실에 얼리면서

얼른 아기에게 보낼 것만 생각하였다.

당일특급으로 얼린 모유를 보내기 위해

강서우체국으로 슬리퍼 바람으로

택시를 타고 갔던 기억.

나의 이런 안타까운 노력에도

처음부터 유난히 적었던 젖이

그만 절로 말라버리고 말았다.


눈물로 참으며 한 달 만에 내려가서 안아본 둘째는

너무도 통통하게 살이 오른 이쁜 얼굴을 하고

엄마를 맞아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아도 저는 아마도 알 것이다.

엄마가 형만 데리고 집으로 가버렸다는 것을....


나는 둘째를 안고 울면서, 금순이의 둘째 시숙을,

그리고 내 친구 Y를 떠올렸다.

어쩌면 우리 둘째도 나중에

그런 마음이 들지 모르겠다.

왜 엄마는 형만 키우고,

나는 외갓집에서 키우게 하였느냐고.

또 왜 형만 아프다고 그렇게 신경 써주고,

자기에게는 덜 관심을 쏟았느냐고...


그런데, 정말 그렇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내가 가진 이 마음이 어찌 첫째와 둘째가 다르겠는가.

첫째는 함께 있지만 마음 아프고,

둘째는 함께 있지 못해서 마음 아프고....


지난주 내내 감기와 체증으로

둘째가 심하게 고생하였다는 말을

친정어머니에게 전해 듣고,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내가 안고 있었더라면

아프더라도 걱정이 덜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나이 들어 몸고생 마음고생 하루도 떠날 날이 없는

친정어머니에게도 죄송한 마음뿐이고...

나는 이래저래 불효를 저지르고,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W, 이쁜 W. 엄마가 얼른 내려가서 꼭 안아줄게. 미안하다. 엄마가 많이 많이 미안해.

우리 빨리 함께 살 수 있도록 엄마가 노력할게. 응?


2007. 12. 10.




2026. 2. 19.


W를 출산한 병원은 강서구에서 꽤 크고 유명한

여성전문 병원이었다.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는.

수유실에서 처음으로 W를 품에 받아 든 순간,

두 팔이 휘청 휘고 허리에도 힘이 바짝 들어갔다.

H와는 전혀 다른 무게감.


나는 뱃속에서 무리하게 아기를 키웠다.

건강한 아기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 아기를 키워

결국 두 번째 분만인데도 자연분만을 하지 못했다.

유난히 뽀얗고 하얀 살결.

큰 머리통과 작고 빠알간 입술.

아기는 내 품에 안겨 휘번득 동그란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아기가 어떻게 쏘아보냐, 거짓말이라 하겠지만

진짜 그랬다. 정말.

아기가 나에게 묻는 듯했다.

당신이 내 엄마야?


나는 이 크고 육중한 아기가 정말 내 아기인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나랑 동갑내기 이 병원 간호사인 산모가

곁에서 한 마디 했다.

지난주 분만 아기 중 네 아기가 제일 커!


제일 쪼꼬만 내가 제일 큰 아기를 낳았다고

그녀는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고생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이렇게 대견하게 새 생명을

무사히 세상에 내놓았구나!


이쁘장한 여자아기를 안고 그녀가 웃었다.

나도 건강한 나의 아기를 안고 비로소 웃었다.

잊지 못할 날이었다.



2026.

눈 동그랗게 뜨고 나를 노려보던 녀석이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된다.

든든한 맏아들처럼 묵직하게 날 지켜주던 둘째.


인생은 참 재미있다.

그때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장하다고 해주던 그녀.

그녀처럼 둘째는 이제 간호사가 될 준비를 한다.

수시 6순위 간호대학에 붙었다.


가장 원했던 조경학과 두 곳이 면접에서 날아갔다.

늘 맞추던 최저도 수능에서 날아갔다.

마지막에 간호학과만 덩그러니 남았다.


뭐가 어때서? 엄마는 제일 좋은데.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해보고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찾아보면 되지.

나는 녀석의 동그란 눈을 보며 찡긋했다.


좀 미안한 마음은 있다. 그놈의 황금돼지 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더 많은 경쟁자들로 힘들었겠지.


새벽 3시까지 불을 밝히던 너의 책상.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용케 버텨준 너의 학창 시절.

성실하고 끈기 있는 너에게

오히려 엄마가 배운 게 더 많아.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넌 정말 멋진 아이야.

넌 아마 네 인생을 정말 잘 살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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