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7
지난 화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역에서 그녀들을 만났다.
언뜻 보기에도 사십 줄은 됨직한 여인들이
지나는 행인들을 붙들고 서명을 부탁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들고 있는 팸플릿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지도 않고 지나치려던 나는
한 순간 그녀들의 외침에
우뚝 멈춰 서 버리고 말았다.
'희귀성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세요.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연약한 목소리에 이끌려 서명을 하고,
후원금란에도 다달이 얼마를 자동이체 할 것인지
기록하고 돌아서는데,
내 안에서
‘우리 아이도....'라는 말이 솟구쳐 올랐다.
우리 아이도 … 희귀성 난치병에 속한다는데.
지금 내가 다른 이를 도울 형편이 되는 걸까.
아니, 혹시 이런 내 작은 도움이
결국은 내 아이를 위한 길은 아닐까.
많은 아픈 아이들.
그 아이들이 내 자식이 되어보지 않는 한,
그 아픔은 그렇게 절절이 가슴 깊이 와닿지 않는다.
아니, 사실, 현실이 정말 그렇다.
지금 나는 내 아이가 힘들기에
그들의 고통을 더 갑절로 느끼고 있는 것일 뿐.
얄팍한 나의 소갈머리에 쓴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그저 나의 현실이 헛웃음으로 맴돈다.
지하철 안에서 그녀들에게서 건네받은
팸플릿을 꺼내 읽었다.
처절한 현실.
눈뜨고 보기에도 괴로운 현장과 생명이
그 안에 고스란히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차마 견딜 수 없는 한숨과 통증.
나는 미처 그 현실을 남의 것인 양
바라보는 것조차도 괴로워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혹여 나에게 그러한 순간이 다가올까 두려워하며,
아니, 내게는 제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아니, 차라리 보지 말 것을 보아버린 듯 회피하며...
그렇게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무도 그런 나를,
아무도 그런 내가 들고 있는 팸플릿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저, 나는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한 괴로운 생명일 뿐이다.
함께 뒹굴고 사는 저들에게도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그것이 어쩜 더 쓸쓸한 것인지도.
2007. 12. 17.
2026. 2. 20.
그때 후원을 시작한 곳은 ‘사랑밭’이었다.
아이가 스물이 될 때까지 나는 꾸준히 그곳에
작은 기부를 하였다.
연말이면 사랑밭에서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비록 인쇄물이지만 그걸 읽을 때마다
나는 다시 2007년의 지하철 3호선
어느 역사로 돌아가 있다.
여전히 그날은 내 가슴속에 살아 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며
각종 기부단체에 이름을 올렸다.
때론 아이의 이름으로,
때론 엄마의 이름으로.
그리고 스물이 된 아들은
이제 자기 이름으로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부를 시작했다.
아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자기가 벌어서 생활했다.
네가 아팠다고 해서 평생 그걸로
누군가에게 사연을 팔면 안 돼.
스물이 되면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엄마에게서 떠나도록 해.
그리고 이제는 네가 번 돈으로
너보다 약한 이에게
작은 기부를 실천해.
다행히 장애를 얻지 않은 감사함.
그것만이 너와 내가 할 일이야.
2026년에도 큰 아들과 같은 아이들은
계속 태어나고 있다.
꼭 엽산 부족이 아니라도 이유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다.
예전에 가입했던 맘카페에서 한 엄마가
자신의 아이의 증상을 올리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수술하고 괜찮냐고
무섭고 두렵다고 글을 올렸다.
수술을 하고 건강해진 아이들의 엄마들이
몇 마디씩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모두들 아직 아기가 어린 엄마들이다.
예전에 탈퇴를 해버려서
다시 가입하여
우리 애는 수술하고 스물이 넘었고
군대 생활도 잘하고 있다고
희망의 댓글을 달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가입자격이 안 된단다.
내 나이가 너무 많아서
엄마가 될 수 없단다.
난 엄마로서 맘카페에 가입하려는 건데
왜 내 나이의 숫자가 중요한지 모르겠다.
딱 한 살 차이였다.
그 한 살로 누구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입되고
누구는 엄마가 될 수 없다고 하니.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
그래, 이제 주름도 생기고
늙기는 했지.
그래도 저 거울 안에는
소녀도 있고, 아가씨도 있고,
젊은 새댁도 있다.
주름이 는 만큼
더 따뜻한 말이 늘었는데.
눈동자가 깊어진 만큼
더 넓게 이해하는데.
세상아.
자꾸 선을 긋지 말자.
차안(此岸)의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존재들.
내가 내어준 한 자락 마음을
매몰차게 거부하지 말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