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8
어렸을 때 나는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병원 가는 일이 많은 아이였다.
그때는 병원 가는 일이
그렇게 힘들고 싫은 일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니,
정말 병원 가는 일은
참으로 달갑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병원.
친절하고 상냥하며
상세하게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는 그런 병원은
대한민국에서 찾기가 그렇게 쉽지 않으니까.
때때로 정말 부드럽고 다정한
의사들을 만나긴 하지만
그것이 이후의 모든 의료행위에 대한 만족도를
보장해주지는 못하니까.
월요일에 P대학병원에 가서
입원서를 제출하고 돌아왔다.
막상 병원에 가보니 입원절차가 어찌나 복잡한지!
입원날짜를 확정받을 때까지 대기해야 하고,
입원하고 나면, 아이가 겪게 될 검사과정은
또 얼마나 아이를 힘들게 할 것인지
(그것은 보나 마나 보호자인 나조차도
지치게 할 상황일 것이다) 불 보듯 훤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찌할 것인가.
나는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부모가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할 뿐.
나의 자식을 위해서는
병원 앞에서 진을 치는 일이 있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분주히 뛰어야 하는 입장인 것을.
입원 날짜도 받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17일이면 모든 것이 그래도
어느 정도 답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연히 또 새로운 날짜를 기다려야 한다니
맥이 쭉 빠졌다.
어쩌면 나는 꽤 오래 걸어야 할 길을
이제 한 걸음 뗐는지도 모른다.
아픈 아이를 안고 사는 부모들은
이렇게 한 걸음부터 불안하고 두렵고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것일 터.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자고 하면서도
성격 탓인지 명확하게 딱 부러지지 않는
이 상황이 갑갑하기만 했다.
다음 주면 큰 아이가 입원을 해서
며칠 동안 검사를 받을 것이다.
아이를 보면서 이런 과정을
한 번이라도 적게 겪게 해야 하는 것이
나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한다.
매일같이 아들과 같은 병을 가진 아이들을 두고 있는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인터넷 카페를 드나든다.
카페에 올려져 있는 사연들은 눈물겹고,
무섭고, 슬픈 이야기들로 가득이다.
나는 아직 아들이 장애를 겪지 않는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 제발 장애가 나타나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그리하여 아들이
이 병을 가진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 한편으로는
아들에게 장애가 나타날 경우,
어찌해야 하는 지를
스스로에게 뼛속 깊이
마음속 깊이 각인시키고
다짐을 시킨다.
엄마는,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강해야 하고,
아이를 위해 순간 대처를 잘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나는 늘 나 자신을 대기상태에 두고 산다.
H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최적의 보호자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준비자세를 하고 산다.
그것이 이제 나에게 주어진 길인 것이다.
2007. 12. 19.
2026. 2. 21.
19년 전의 블로그를 들춰 보니
아, 내가 이때 참 힘들었구나,
이렇게 절박했구나.
왠지 그때의 내가 안쓰러워 눈물이 난다.
앉으나 서나
혹은 간신히 누웠다가도
H가 무슨 소리만 내면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소변 줄기와 양도 체크하고
배변 자세와 항문도 들여다 보고
아이의 발과 발목을 수시로 만졌다.
혹시나 각도가 틀어진 건 아닌가,
내 눈이 정확한가.
의심에 의심, 걱정에 걱정을
더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언제든 벌떡 일어나
아이를 안고 달려 나갈 준비.
이제 남편 없이 살아야 하니
내가 나를 다그쳤다.
아이의 엉덩이 윗부분
흉터를 어루만졌다.
내 생명에 어떤 힘이 있다면
거기서 좋은 기운이란 기운은
다 끄집어내어 너에게 줄게.
그러다 잠이 들면
아침에는 가슴팍 위에
아이가 얼굴을 묻고 배시시 웃었다.
그때는 그것이
나를 살게 한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