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10
내게는 두 아이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이들이 나에게 올 때마다
이쁜 딸아이를 얻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이쁜 아들아이 또한
너무나 깊이 사랑하고,
또 소중한 나의 아이임을 기뻐한다.
방학 기간,
지금 두 아이는 함께 지내고 있다.
그것이 서로에게 참으로 행복한 일임을 의심치 않는다.
큰 아이는 작은 아이를 '애기'라 부르면서
무척 이뻐한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안고 있으면 샘이 나는지
'내려! 내려!' 소리 지르며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그러고는 금세 작은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로 뛰어올라
'애기야' 하면서 이쁘다고 볼을 쓰다듬어 준다.
작은 아이는 이제 만 오 개월이 되었다.
새록새록 키우는 재미가 쏠쏠할 때인데,
엄마의 품보다 외할머니의 품이
더 익숙해져 버려 마음이 아프다.
엄마를 알아보는지 모르는지
그저 방긋방긋
웃어대는 아이가 참으로 이쁘다.
내리사랑이라 그러던데.
정말 그런가 보다.
작은 아이는 작은 아이라
또 그저 그렇게 이쁘기만 하다.
큰 아이는 이제 만 이십칠 개월이 되었다.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
살아가면서 큰 아이에게 그 빚을 어찌 갚아야 할까.
큰 아이보다 작은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쓰게 되는 시기인데도,
지금은 온통 큰 아이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건 자식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 말이다.)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자식이란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부모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식인 듯하다.
자식의 맑은 눈을 보면서 제대로 살지 못하면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하긴 요즘은 자식이 있어도
철들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또 누구나 자식을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자식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너무나 자식을 원했다.
그런 자식으로 인해서 정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고자 한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
자식에게는 좀 더 바르고,
깨끗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자식에게 바르고 깨끗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며,
함께 그러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
그것이 지금 내가
두 아이에게 가지는 간절한 마음이다.
2008. 1. 8.
2026. 2. 23.
H의 태몽은 검은 거북이였다.
꿈속에서 나는 침대 아래에서
가마솥뚜껑보다 큰 검은 거북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꾸면서 확신했다. 아, 아들이구나.
W의 태몽은 하얀색 털스웨터와 털바지였다.
큰 올케가 어린 아들을 업고 와서
내게 하얀색으로 곱게 짠
스웨터와 바지를 선물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울먹이며 반문했다.
왜, 치마가 아니고 바지야?
왜, 딸은 안 데리고 왔어?
올케는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었다.
꾸면서 확신했다. 또, 아들이구나.
나는 딸 귀한 집의 맏손녀였다.
남동생들만 바글바글한 집안.
사내아이들 틈에서 와일드하게 자랐다.
막내삼촌이 내 나이 스물여덟에야 겨우
여동생을 낳아 주었다.
딸은 내게 허락되지 않는 건가.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심지어 남편조차 오빠가 아닌 남동생.
이제 집안에 남자만 셋이었다.
엄마.
왜 나를 대한민국에서 낳으셨어요?
두 아들이 가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물음이 가진 함의를 안다.
엄마.
지금 사회를 보세요.
바르고 깨끗하게 살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에요.
두 아들이 가끔 나에게 한탄을 했다.
그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안다.
그래, 너희를 낳은 건
다 엄마 욕심이었나 봐.
정말 힘든 세상이지.
좀 더 예쁘고 고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있잖아.
세상은 늘 어지러웠어.
그 가운데서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그러니 잘 찾아가 보자.
최선의 길을 잘 찾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