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by seon

필라테스를 시작하며 뻣뻣했던 나의 몸에 조금씩 유연함과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대가였을까. 몸에 남아 있던 에너지가 몽땅 소진되어 버렸다. 그래도 수영은 가야 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영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명상인지, 졸음인지 모를 짧은 시간에 정신을 놓고 있다 보니 어느새 수영장에 도착해 있었다.
‘너무 늦었네.’

수영장으로 향하는 셔틀버스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인사가 오가고, 서로의 근황을 묻고, 건강에 대한 정보가 오갔다. 대화를 나누는 분들은 모두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이분들에게 추위는 별문제가 아닌 듯했다. 앞뒤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속에서, 문득 이것이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움직이고, 함께 말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풍경 말이다.

얼마 전에는 누구보다 총명하고 영민했던 한 선배를 만났다.
그분은 지혜롭고 문학적인 감수성이 뛰어난, 말 그대로 ‘문학 소녀’ 같은 분이었다. 책 읽기를 즐기고 자연을 사랑해 매일같이 산을 찾았으며, 사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맞이하는 데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이었다.

집을 찾는 이가 누구든 산행을 함께하자고 권했고, 길가에 피어난 소소한 들꽃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 주는 세밀함을 지니고 있었다. 새소리만 듣고도 어떤 새인지 알아맞힐 만큼 자연과 깊이 연결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늘 적절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던 그분이, 어느 순간 단어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은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아들과 함께 살다 아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난 뒤 혼자 지낸 시간이 길어졌고, 낯선 곳에서 생활하며 함께 대화하고 삶을 나눌 사람이 곁에 없어진 탓이었다. 자연을 사랑했지만 함께할 사람이 없었고, 독서와 사색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소통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속상함과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헤어지는 순간, 홀로 남겨두고 떠나오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고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총명하고 명석했으며 말센스와 재치 있는 표현에 능숙했던 그분의 변화를 보며, 곁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요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을 자주 스스로에게 던진다.
직장인으로 살던 때와 다르지 않게, 사람들과 단절되지 않고 계속 소통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그리고 그런 삶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 내가 붙들어야 할 꾸준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지만, 서두르기보다는 시간을 들여 나만의 리듬과 방향을 차분히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 과정에서 문득,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기고 때로는 귀찮게 느끼기까지 했던 짝꿍의 존재가 떠오른다. 함께 있다는 이유로 소홀해졌지만, 사실 그 사람은 인생의 끝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발걸음을 맞춰가야 할 가장 가까운 동반자다. 이제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서로의 변화와 속도를 존중하며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 그렇게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까지 함께 나누며, 오래도록 나란히 잘 지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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