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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Feb 18. 2023

버스 안의 잠자는 공주

 예약한 좌석은 가장 뒷라인 우측 창가 좌석이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좌측에 이미 누군가 앉아 있고 눈을 감고 있다.

 "저기요" 우측 팔은 내가 앉을자리에 벌러덩 한 채로 곤히 잠든 여성이 실눈을 뜨고는 나를 보더니 무릎을 살짝 당기고 팔을 자신의 다리 위로 옮겼다.

 보통 사내였음 들어가기 힘들었을 좁은 틈새. 나는 그녀와의 불필요한 접촉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하며 쏙 들어가 앉았다.

 크게 숨을 몰아낸 그녀. 마스크를 뚫은 술 냄새가 났고 머리는 아무렇게 눌리고 떡졌다. 어쩌면 조금 전까지 마시고 버스를 탄 듯한 그녀의 모습은 혹시 멀미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라는 걱정까지 잠시 하게 했다.

  오늘은 만석이다. 빈자리하나 없어서 피신할 곳도 없다. 이미 그녀는 다시 잠이 들었고 나는 조심스레 벨트를 매고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서 그녀가 좀 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게 하고는 나 역시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어깨로 그녀의 머리가 쿵하니 떨어져 기대더니 살짝 머리를 들다가 다시 쿵. 그렇게 서너 번 하더니 더 이상 머리를 들 생각 없이 기대고서 술 냄새와 잔잔한 코골이를 시작한다.

  한동안 그 자세로 고정되어 있더니 갑자기 그녀의 머리가 벌떡 들리고 마스크를 내린다. 속이 불편해 보였다. 아.. 위험하다. 그녀는 두어 번 미간을 찡그리다가 다행히 괜찮아졌는지 머리를 좌우로 작은 원을 그리며 두리번거리더니 이번에는 아예 내쪽으로 몸을 돌려 다시 잠을 청했다. 마스크는 턱까지 내려진 채 더 진한 술향을 풍기며 깊은 잠에 빠진 그녀는 이제 막 스물이 넘은 듯한 앳된 얼굴이었다.

 나는 서서히 창쪽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머리가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몸을 돌려 그녀의 머리가 나의 등 쪽에 기대게 했다. 그녀의 뜨거운 콧김이 주기적으로 등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나는 빠르게 지나는 창가 풍경을 강제로 감상하며 이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이 아무런 사고 없이 풍경처럼 빠르게 지나가길 기원했다.

 드디어 대전 복합터미널에 도착안내 멘트가 나왔고 그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머리를 들어 올렸고 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기더니 제일 마지막 라인에서 뛰어서 일등으로 하차를 하고서 어딘가로 뛰어갔다.

 어쩌면 그녀는 내 등에 기대어 잠든 게 아니라 고통을 참기 위한 기댈 언덕으로 내 등을 이용했지도 모른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윗옷을 벗고 등 쪽에 살짝 얼룩진 자국을 지우는 간이 손세탁 작업이 시행했다. 아래쪽은 코와 입 쪽 얼룩이고 위쪽은 머리 쪽 기름 같은 얼룩. 비누칠 살짝 하면서 티슈로 몇 번 문지르니 흔적은 이내 사라졌다.

 옷을 다시 입고서 화장실을 나오니 여성 화장실 쪽에서 나오는 그녀가 보였다. 통로를 뛰어갈 때와 달리 살짝 비틀거리며 걷는 그녀. 이제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으니 혼자서 잘 가길.

 잘 참았고 잘 견뎠어요. 버스 안의 잠자는 공주님. 오늘 하루는 술 마시지 말고 잘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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