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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May 11. 2022

탱고 소셜 5.

탱고 on 무대

얼어 죽을 것 같은 날씨지만 미국의 의류 브랜드인 OO코리아 연말 파티는 마치 콘서트장처럼 뜨거웠다. 살사와 탱고를 같이 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공간이나 장소, 행사 형식은 물론이고 어떤 춤 인지도 모른 채 단지 라틴이슈로 인해 의뢰했던 주최 측의 까다로운 호기심까지 채워줄 수 있는  다양한 안무를 구상할 수 있었다. 전 세계적인 라틴열풍으로 인해 공연 의뢰가 많았고 특히 연말에는 다음 행사를 위해 택시를 대기시켜야 할 때도 있었다. 행사 오프닝 무대. 비보이 퍼포먼스. 그들이 보인 엄청난 댄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다양한 색으로 염색하고 쭉쭉 뻗은 팔과 다리를 파워풀하면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4명의 남녀 혼성으로 구성된 비보이들을 향해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소리를 뚫을 정도의 함성을 지르며 나는 그들의 팬이 되고 있었지만 불안감도 시작되었다. 만약에 두 번째 공연이 첫 무대의 느낌을 받고 더 상승시킨다면 세 번째 팀인 우리의 공연은 오늘의 날씨처럼 이 공간을 얼어붙게 만들지도 모를 난감한 무대가 될 것이다. 이어지는 무대, 소개받은 한쌍의 남녀가 주고받듯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래가 나에게는 구세주의 목소리처럼 성스럽게 느껴졌다. 미쳐서 날뛸 것 같은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정숙하게 만들어 주었기에 이어진 나의 공연은 무난하고 자연스러운 함성과 박수로 끝날 수 있었다.


공연 후 안내받은 초청팀 테이블에는 비보이팀이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대단하시던데요. 팬이 되었습니다"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던 그들이 나를 올려보더니 황급히 입을 닦으며 의자를 엉덩이로 밀고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선생님 공연 잘 보았습니다." 민망할 정도로 공손한 태도와 말투였고 그로 인해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와 약간의 음주 그리고 서로의 춤에 대해서 대화가 이어갔다. 두 팀 모두 연인관계가 아닌 저스트 댄스 파트너라는 사실에 놀라워하기도 했었는데 진짜 놀라운 얘기는 따로 있었다. 서로 눈치를 보던 중 비보이 한 명이 말을 꺼냈다.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우고 싶다며 팀 강습을 해줄 수 있는지에 관한 문의였다. 긴장과 흥분이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 "그럼요. 가능하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더욱 고조된 톤과 표정으로 탱고 강습에 관해 빠르게 스케줄을 잡았고, 첫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다음 주 토요일 오전 11시. 건대 부근 그들의 연습실은 아담했지만 멋져 보였다. 기다리고 있던 그들은 마치 아이돌 연습생처럼 큰 소리로 합을 맞혀 인사를 했고 그 모습조차 춤으로 느껴질 만큼 타이트한 연습복을 착용한 그들의 몸들은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기초 동작을 익히는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한 시간. 4명 모두가 빠르게 익혀갔다. 엄청난 탱고 댄서가 될 것 같은 느낌. 첫 스텝 연습에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볼 수 있었고, 나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는 건 이 날로부터 불과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첫 강습을 마친 후 음악에 맞춰 자율적으로 연습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심장은 양철 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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