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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May 12. 2022

탱고 소셜 6.

탱고 in 밀롱가

 오르고 내리는 네 개의 언덕과 건너야 하는 두 개의 강과 잠시 머물 수 있는 두 곳의 평지를 가진 살리다를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탱고는 지구 상에서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가장 오래된 댄스 중 하나이다. 8 개의 포지션은 다양한 패턴으로 이어지는 출구의 역할을 하기에 하찮게 지날 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으며, 패턴마다 아주 오래되고 경이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이야기들을 알고 나서 살리다의 길을 걸으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터 한가운데 서 있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밀롱가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데, 이들을 보다 보면 100년 전의 이민자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들 사이로 나와 같은 동양인도 여기저기 보인다. 리듬이 느껴지거나 우아함 자체이거나 좌우상하를 단순하면서도 텐션 있는 짧은 스텝으로 일정한 패턴 없이 추거나 스위칭을 기반으로 체인이 혼합되어 방향 전환이나 회전이 동반되는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좁은 개인 공간만이 허락되는 복잡한 밀롱가에서도 이렇듯 다양한 사람들이 그만큼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탱고를 표현하고 즐기고 있다.


 멋진 슈트를 입은 사람도 있고 청바지 차림의 자유로운 복장도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춤 선이 단정한 신사와 동선이 거친 격투사, 아름답고 화려해서 절로 눈이 따라가게 되는 댄서들 사이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몇몇 사람들도 있다. 이 콜로세움 같은 밀롱가에서 나는 길을 잃은 아이 중 한 명이었다. 박자를 맞추는 건지 용기를 려는 건지 톡톡 가볍게 내 등을 두들기는 그녀의 손가락 리듬에 모든 출구가 막혀버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아이의 눈에는 곧 눈물이 쏟아질 듯 그렁그렁하다. 모든 사람이 천국에서 춤추고 있을 때 오직 나의 파트너만이 나의 발에 이끌러 지옥을 느끼고 있을 거란 생각에 끝까지 안고 있는 레베까가 고맙기도 했지만 차라리 나를 버리길 바랄 정도로 미안함을 넘어선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그 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첫 탱고였다.


 그로부터 약 4년 후 홍콩의 밀롱가에서 다시 만난 그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춤을 출 수 있었던 나는 샹젤리제 거리의 바리오 라티노 클럽에서 탱고를 추었던 길을 잃은 어린아이이었음을 밝혔더니 환호성 같은 소리를 지르며 열 번도 더 넘는 베소를 하는 레베까. 나는 비로소 오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 리듬은 그냥 사소한 습관 임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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