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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Nov 07. 2022

눈을 감다.

신청서

"장소와 시간대 그리고 체류시간을 정확히 기재하셔야 합니다"

상담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녀가 내민 신청서를 천천히 바라보는 정호.

모든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그런데 막상 장소와 시간을 확정하려니
혹시나 잘못된 기억은 아닐까?
두려움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체류시간 최대는 1시간이니 유념하시고
연장 신청 가능 횟수는 3회이나
그 3 회의 합 또한 1시간 이내입니다 "

총 2시간이 가능하다는 얘기.
그리고 이어지는 비용 상담

"신청서 하단에 보시면 기재되어 있지만
비용에 관해 설명드리면
계약비 1천만 원, 여행 당일 9천만 원이며
연장 시는 10분 단위로 5천만 원이 부여됩니다. 그 연장 비용은 여행 전에 미리
납부하시고 미연장 시 전액 환급됩니다."

총 4억이 필요한 여행을 준비 중인 정호.
그는 다시 신청서를 찬찬히 바라보다
펜을 들어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1998년 12월 14일 저녁 10시. 역삼동 연습실.

"오늘부터 신청서 내용에 따라 세팅을 시작하면 일주일이 소요되며 변경 불가능하니 꼼꼼히 확인하시길 바랄게요"

싸인까지 마친 신청서를 내미는 정호에게
주의사항을 다시 전하는 상담사는 무척이나
신중한 눈빛이었다.

"네. 신청 전에 모든 기록을 바탕으로 확정된 것이니 분명합니다."

만약에 잘못된 판단이라 해도
어쩔 수 없음을 알고 결정했던 일이라
더 이상의 망설임은 필요 없었다.

"지금 계약금을 이체했어요.
확인하시고 일주일 뒤 여기로 오기 전에
완납하도록 할게요"

모든 절차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정호.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몸을 돌린다. 한 계단씩 내려가며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표정 없이 응시하다가 낮은 소리로 웅얼거린다.

"그래, 다 바꿀 수 있어. 꼭 그렇게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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