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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Nov 07. 2022

눈을 감다

북경 1

1.

1998년 11월 현재.

"석이 오빠가 연락이 안돼요"

무척이나 답답한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 쉬는 지윤의 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담주에 북경으로 가니까 그때 내가 어떻게든 소식을 알아볼게"

정호의 말에 조금 전 모습과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웃는 지윤을 살짝 안고서 도닥여주었다.

"아무 일 없을 거야. 걱정 말고 석이의 주소를 보내줘. 연락처랑."

"네"라고 대답하는 지윤의 얼굴이 좀 더 숙여지고 어깨와 등이 살짝 들썩인다.
울고 있다. 걱정만 하다가 조금은 안도되니 저절로 나오는 눈물이 소리 없이 뜨겁게 정호의 어깨를 젖시고 있다.

2.

"팀장님. 지금 출발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더 지체하시면 늦으실 것 같아요"

출장 전에 북경 쪽 지인을 통해 미리 수소문하고 있는 중에 출발을 재촉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팀원.

"응. 미안. 체크는 다 했어?. 여권이랑 항공 티켓 그리고 인보이스 한번 더 체크해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깨에 크로스로 맨
작은 백 지퍼를 열고서 뿌듯한 웃음 짓는 주희에게 엄지 척해주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팀장님. 너무 설레요. 해외는 처음이라"

겨우 1박짜리 중국 여행이라 일정이 바쁠 것이 뻔한데도 이제 갓 스무 살인 그녀에게는 인생 최대의 파티를 앞둔 것 같아 보였다.

"이번 건은 주희의 역할이 컸어. 현장에서도 실력 제대로 발휘해 줘"

"넵! 팀장님이 뽑아주신 은혜에 철저히 보답하겠습니다"

중국 출장 건이 잡히고 준비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중국어를 잘하는지 계속해서 나에게 어필했던 주희. 출근 인사부터 일상 대화에서는 거의 중국말을 먼저 하고 한국어로 통역하듯 다시 말하곤 했다.

이력서의 특기란에 중국어라고 적혀 있었던 주희는 어릴 적 옆집 친구가 화교인이라 자연스레 중국어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실력은 전공자보다 못하지 않아 보였었다.

그 덕에 출장 준비도 원활했고 "뱅기 타 보는 게 소원이에요"라는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고 아르바이트 사원 신분으로 해외출장까지 가게 된 것이 그녀로선 꿈같다며 내내 콧노래를 부르며 정호 뒤를 졸졸 따른다.

탑승 절차를 하는 내내 신기한 듯 불안한 듯 눈을 소리 내게 굴리는 주희.

"주희야. 이제 탑승하면 되는데 주의할 게 있어. 기내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꼭 벗어야 해. 신발 신고 들어가면
경보가 울리고 탑승 중단이 될 수도 있어"

우리가 탑승할 항공편 게이트가 열리자 주희에게 신중하게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앞장서는 정호. 그 뒤를 따르는 주희는 다양한 마음이 뒤섞인 듯 알 수 없는 표정이다.

통로를 반 정도 지나면 뒤돌아보니 양손에 신발을 바짝 들고 고양이 걸음을 하는 주희는 정호와 눈이 마주치자 지금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듯이 소리 없이 크게 웃고 있는 모습에 정호는 참지 못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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