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우탱고 May 10. 2022

탱고 소셜 4.

탱고 in 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을 때, 그녀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듯하다. 새벽 일찍 KTX를 타고 목포에 와서 흑산도로 출발하는 배에 탑승을 했으니 피곤함에 잠시 눈을 붙인 뒤로는 상쾌한 기분이었다.

"세상을 끝을 향해 가는 것 같아" 대답이 필요한 질문이 아니기에 나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지나오는 바람에는 꽃향기가 났고 배는 마치 범선처럼 우아하게 바다를 가르며 달린다.


여름휴가를 서로 맞추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대 미술을 담당했던 공연의 종료와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었고, 나는 그 기간에 휴가를 신청했었다. 바다 쪽으로 멀리 가고 싶었기에 흑산도로 정하는 것에 서로 쉽게 동의했다. "바다보다 넓은 세상은 없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건 바다뿐이다. 침묵 속에서도 감지되는 서로의 마음을 통해 각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 그 이유만으로도 그녀와 함께 있을 땐 소비되지 않고 채워지는 시간이 된다. "저기 봐. 저기가 바로 세상이 끝나는 곳인가 봐" 선배가 가리키는 손끝에 섬이 보인다.


선착장에 내려 약도를 보며 예약을 해 둔 숙소로 향했다. 약간은 가파른 곳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낡은 선풍기 한대와 벽에 붙어 있는 에어컨이 보였고 그 옆에 있는 작은 창을 열면 바다가 바로 보이는 낡은 여관이었다. "방이 귀엽다" 욕실 문을 열고 머리를 쑤욱 집어넣고는 두리번거린다. "정말 욕조가 있네" 선배는 욕조에다 바닷물을 채우고 몸을 담그고 싶다고 했었다. 그럼 바닷속에 있는 느낌이 날지도 모른다며.


꼬르륵 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식당을 찾았다. 단독으로 있는 목조건물인 식당의 큰 창 너머로 바다가 가득 보였고 흑산도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생홍어회는 소주 한잔과 함께 찰지면서도 부드럽게 살살 녹아내렸다. 회를 잘 못 먹는 둘의 젓가락이 싸움을 할 정도다.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우리 둘이 섬과 바디를 통째로 전세 낸 것 같아!" 식사와 반주로 기분이 한껏 좋아진 선배는 팔짱을 낀 채로 파도처럼 팔짝팔짝 뛰며 걸었다.


조금 더 걷다 거친 나무로 만들어진 벤치가 보여 앉았다. 동선 했었던 몇몇 사람들이 무리 지어 조금 전 그 식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는 바다는 신비감마저 든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서서 그녀와 함께 스텝을 밟아본다. 그녀는 등을 살짝 웅크리며 까르르 한번 웃더니 이내 왼손을 내 어깨 위에 올리고 나의 리드를 받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음악이 되고 색이 변하고 있는 하늘은 조명이 되어 우리는 탱고의 바다에 풍덩 빠져 들었다. 항상 그렇듯, 향기는 나쁜 기억을 쫓아내고 좋은 기억을 데려온다. 지나는 몇몇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좋은 기억을 떠 올리고 있는 듯하다. 지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처럼 느껴지고 우리의 춤을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탱고 소셜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