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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Nov 17. 2023

셀 위?

 춤을 청한다. 청함을 받은 누군가는 그와 춤을 출 것인지, 추지 않을 것인지를 판단한다.


 춤추기를 받아들인 그들의 관계는 순조롭고 안정되어 보인다.


 그런데 만약 거절했다면 그들의 관계에서는 어색하고 불편함이 느껴진다.


  청함이 있다면 받아들임도 거절도 할 수 있는 것인데 받아들임과 거절받음에 어찌하여 두 감정이 생기는 것일까?


 거절받음에도 그 둘의 관계에 편안함이 생기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가깝고 친하거나 자주 봐야 하는 관계란 거절하지 말아야 하는 관계일까?


 나는 거절하는 것이 힘들어하는 사람인가? 그것을 함에 불편함이 없는 사람일까?

 

시작된 하루에 밖을 나서면서 오늘 날씨가 왜 좋은지? 왜 나쁜지? 따져 물어본다면 그것은 오늘 하루도 힘들게 시작됨이고 물어보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도 즐겁게 시작되고 있음이다.


 식사를 하면서 이걸 왜 먹는지 따진다면 맛이 없고 맛있다면 따져 묻지 않는다.


 우리가 왜 만날까?라고 생각이 든 연인은 어쩜 내일이면 헤어질 사이일 수도 있다. 뜨겁게 사랑할 때는 그런 의문이 생기지도 질문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이렇게 어떤 불편함 생기는 순간이란 그 이유를 찾게 되는 순간과 동일한 경우가 많다.


 나의 청함에 누군가가 받아들였다면 굳이 왜?를 묻지 않듯, 거절의 이유를 찾기 위해 그 자리에 머뭇거려야 하는 불편함이 가득한 시간보다는  다른 청함의 기회를 한번 더 가지는 것이 좀 더 현명하게 느껴진다.


현재 내가 가진 능력은 거절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젓가락을 오른손으로 잡는다면 그것을 받아들인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지만 간혹 왼손으로 못하게 해서 오른손으로 하게 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그로 인해 젓가락을 잡은 오른손의 불편함을 가진채 살아가진 않는다.  오히려 양손을 다 쓸 수 있는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 있는 양손잡이가 될 수도 있다.


 받아들임에는 순조로움 흐름이 있으니 좋고 거절은 서로가 다른 기회를 가지는 것이니 더 좋을 수 있다.


 잠이 거절된 이 시간은 나에게 서툴지만 글쓰기의 기회를 주고 있다. 그로 인해 책도 출판할 수 있었다. 만약 불면의 이유만 찾고 있다면 나는 숙면도 글쓰기도 모두 가지지 못한 단지 불편하고 괴로운 시간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누군가의 셀 위? 에 거절하고 싶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당신 또한 새로운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니 청함에  앞서 거절받을까? 거절함에 앞서  불편해질까?를 걱정하지 말고 맘껏 청하고 맘껏 거절하고 또 그것에 굳이 이유를 찾지 말자.


 거절의 다른 이름은 바로 또 다른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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