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 위한 아지트 오픈

#4 잘 놀기 위해 집을 구했다

by 효롱이

"효롱님 책상이랑 의자 옮기고

확인 부탁드릴게요."

모임이 수요일인데 월요일에 이제야 책상이랑 의자가 왔다. 분홍은 일이 있어 직접 오지 못하고 마음만 급해져 내게 전화했는데 걱정이 되는지 목소리가 작게 흔들렸다.


난 고민하다 혼자 하기에는 짐이 많아 반초와 1퍼까지 연락을 해보니 역시나 도와줄 수 있다고 짬을 내 바로 모였다.


우리는 수컷 고양이 세 마리가 돼서 노란 박스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찢듯 열어 물건들을 꺼냈다. 순식간이 하얀 바닥에 노란 낙엽이 쌓이듯 박스를 감싸던 테이프들이 떨어져 나갔다. 제품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크기가 방 크기에 맞는지 설치해 봤다.

한참을 준비하고 있으니 늦게 일을 마치고 분홍과 둥둥이가 왔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죠. 아구, 고생 많으셨어요. 이걸 다 올리고 정리하신 건가요?"

둥둥은 눈을 깜빡이며 흩어져 있는 봉지들을 모으며 말했다.


"다들 도와주셔서 힘들지 않았어요. 둥둥이님 냉장고와 의자 기증 감사해요. 안 그래도 준비된 돈보다 지출이 많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딱이에요."

뭘요.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별일 아니라 말했다. 그녀 덕분에 위칸은 파란 파스텔색, 아래는 하얀색인 투톤으로 된 세련되고 귀여운 냉장고를 놓을 수 있게 되었고, 시원한 물과 탄산수를 가득 채웠다.


분홍도 같이 뒷정리를 하며 둥둥에게 물어봤다.

"둥둥님. 우리 살롱도 그렇지만 준비하고 있는 가게는 준비 잘 되고 있나요?"


"모르겠어요. 조그만 가게는 구하긴 했는데 잘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열심히 하는데 오픈을 해봐야 느낌이라도 올 것 같아요."

자세히 보니 큰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끼어있는 게 이래저래 고생을 많은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작다고 해도 가게를 처음으로 오픈하는 것인데 얼마나 신경이 많이 쓰이겠는가. 그런 바쁜 와중에도 모임에 나오는 그녀에게 걱정과 동시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대충 짐 정리가 끝나자 바닥에 앉아 둥둥에게 물어봤다.

"가게 이름은 정했어요?"

"네. 희와제과요. 이름 어때요?"

그녀는 피곤해서 감기는 눈을 번쩍 뜨며 뭔가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하. 부담스러워서 이야기하겠어요? 별로라고 하면 우시는 것 아니에요? 개성 있어 좋네요. 그런데 무슨 뜻이죠?"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한자를 보여주며 말했다.

"희(喜)와(臥)예요. 즐겁게 쉬다 가라. 는 의미를 담았어요."

"왜 그런 이름을 정한 거죠?"

그녀는 볼을 다람쥐처럼 부풀이다가 길게 날숨을 내뱉었다.

"쉬지도 않고 무엇인가에 열중해서 달리기만 한 것 같아요. 나 같은 사람이 편히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반초는 옆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말했다.

"해운대 독서 살롱이랑 비슷하네요. 다들 와서 지금처럼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가잖아요."

그 말을 듣고 둥둥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렇기도 하네요. 이름이랑 모임 성격은 달라도...... 뭐랄까 코드? 생각? 잘 말은 못 하겠지만 비슷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분홍은 옆에서 캔커피를 마시다 말했다.

"끼리끼리니까 이렇게 다 모여있는 것이겠죠."


1퍼도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네 명을 봤다. 우리는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성격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내 생각에도 우리 다섯은 비슷한 무엇을 지니고 있다. 뭐라고 말할까. 입에 맴돌기만 하고 시원하게 내뱉을 수 단어가 없다. 둥둥도 힘들게 코드라고 말했지만 난 더 정확한 단어를 찾으려고 한참을 혼자 끙끙대다가 그저 결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우리를 이루는 바탕이나 상태가 흡사한 것 같은데 어떤 형상이나 성질이 유사한지는 모르겠다. 그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결이 비슷하기에 이렇게 쉽게 뭉칠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 것은 해운대 독서 살롱이 있기 때문이니 참 고마운 일이다.


어찌 보면 희와제과도 다른 형태의 해운대 독서살롱인 것 같고, 해운대 독서살롱은 다른 형태의 희와제과인 것만 같다. 그 이유는 핵심적인 가치가 같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결이 비슷한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인생의 향기일 것이다. 나는 흐뭇하게 아지트에서 회원들의 비슷한 부드러운 결을 느끼듯, 향기를 음미하듯, 자리에 앉아 잠시 쉬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준비가 어설프지만 한번 해보고 부족한 것은 채우죠. 오늘은 이만 다들 집으로 돌아갑시다."

분홍은 정확한 발음으로 칼로 자르듯 정확한 마무리를 지었고 모두 호응하듯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가는 길에 이제 시작할 해운대 독서살롱 아지트 이름을 정하자고 카카오 오픈톡에 말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그냥 아지트라고 부르기도 멋이 없고, 해운대 독서 살롱이라고 부르면 모임명과 겹쳐서 구분이 안 갈 것 같아서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모임에 물어보니, 다들 좋은 이름을 많이 내놓았다. 이 중에 반장과 나는 고민을 했는데 그래도 직관적이고 해운대 독서 살롱과 합이 맞는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회원이신 모닌님이 처음 말한 해운대 독서살롱 하우스하고 이름 지었다. 역시나 우리 모임에서 가장 젊은 회원에 속하는 분이셔서 감각이 좋다. 난 이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해운대 살롱 하우스라고 바로 적어 블로그에 위치와 주차장 안내를 위한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올렸다.


사람 마음이 재미있는 게 이렇게 이름을 붙이니 시멘트로 이루어진 공간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우리 모두의 따스한 관심이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불어넣듯 살롱 하우스에 채워진 것일까


화장지며 쓰레기봉투며 다른 작은 것도 준비하다 보니 금방 수요일이 되었다. 준비는 어설픈데 회원은 12명이나 모이기로 했다.

난 종갓집 며느리가 손님을 맞는 것처럼 신경이 쓰였지만 다들 긍정적인 분이니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노력했다.


회원분들은 휴지, 청소도구 등 케이크까지 사 오셨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 후 회원님이 사 온 케이크에 불을 켜고 입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은 경험을 사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쓴다는데, 독서 모임에서 이토록 새로운 경험을 다채롭게 하니 모임 전체가 커다란 보석상자 아니겠는가


또 살롱 하우스는 앞으로 또 얼마나 새로운 경험을 줄까. 난 이런 기대 속에 케이크의 촛불처럼 내 마음도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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