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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Mar 03. 2023

남자는 쇼핑할 때 무슨 생각을 할까?

#2. 남자는 도대체 왜 그래요?

"오빠 오늘 쇼핑하러 가는데 같이 갈래?"

이건 선택권이 있는 질문인가?

아니다. 이건 같이 가자는 말이다.


힘들더라도 표정 유지를 잘해야 한다.

예리한 여자의 감은 남자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스캐닝하고 있음을 알자. 어차피 가야 하는데 기분 좋게 가는 게 나에게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래. 가야지."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차마 좋다는 말은 못 하고 남자는 최대한 괜찮다는 표정으로 알겠다 답한다.


쇼핑을 가는 날

난 언제나 여성의 신비를 접한다. 이것은 짧은 하루에 수많은 생각을 남긴다.


왜? 아니! 진짜?

여러 감탄사가 생각의 잔상을 따라 흐르듯 튀어나온다.


일단 왜? 내가 왜 여자 옷을 보고 있을까?

재미가 없다. 모르겠다.

남자의 옷과 여자의 옷은 다르다.

남자의 옷은 쉽다.

점퍼면 점퍼, 바지면 바지, 셔츠면 셔츠.

색도 검은색, 흰색, 회색, 베이지 단순하다.

남자도 패피도 있고 옷 잘 입는 사람도 많지만 확실히 비율을 따지자면 여자보다 옷을 꿰고 있는 남자는 드물다.

나 같은 경우는 남자 명품 메이커도 잘 모르고 심지어 기본 메이커도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아주 유명한 매장밖에 모른다.

이게 남자가 여자 쇼핑할 때 힘들어하는 이유다. 남자 옷도 모르는데 여자 옷을 살피러 다니는 게 어떻게 재미있겠나.

여자 입장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피시게임 매장, 오토바이 상점을 정신이 홀러 다니는 남자 뒤를 따라 3시간을 동행하는 느낌과 비슷할까?

남즈는 알 수 없는 디자인과 어디에 입은 제품인지도 모른 채 다녀야 하니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없다.


그래도 절제하고 그녀를 따라간다.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도 한 번씩 한다.

그래! 나는 운동 중이다.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일부러 걸으니 좋다. 난 좋다. 아오. 좋다

생각을 지우고 이렇게 명상하며 따라 걷는다.

당연히 내 손에는 하나둘씩 구매한 옷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여자는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는 포식할 대상을 찾는 매처럼 가늘게 눈을 뜨고 목표물들만 탐색할 뿐.

말을 시키지 말자.

저 몰입된 집중력은 "나 힘들어"라는 남자의 혼잣말 빼고는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이다.

그리고 "나 힘들어." 금기어다.

지금 여자의 주의력을 흐트러 버리면 이 쇼핑의 모험이 끝나는 게 아니다. 더욱 살벌한 이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긴 드라마처럼 반영 시간이 연장될 뿐이다.)

절대 말하지 말자. 다짐하며 따라간다.

그녀는 또다시 다른 가게로 들어간다.

한참을 또 본다. 그리고 묻는다.

몸만 함께하면 안 된다. 영혼도 깨워 신선하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인 이 질문이 있다.

"오빠 이 옷 어때?"

남자는 모른다.

그 옷이 아까 본 옷과 뭐가 다른 건지. 어디에 입는 옷인지도 모르는데 그런 디테일한 차이를 알리가 있나.

내가 진정 작가가 되는 순간은 이때다.

없는 감상을 심연에서 끌어올려 그녀의 입맛에  딱 알맞은 말로 완성해야 한다.

사실과 달라도 실패,

건성으로 대답해도 실패,

사실만 나열해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을 해도 실패다.

왜 여자는 이런 행동과 질문을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게 이런 과정을 거친다.


나는 질문이 있을 것을 알기에 내 옷을 살 때보다 집중하며 다닌다.

몸은 힘들고 알지도 못하는 세계를 계속 탐구하니 집중력까지 고갈된다.

몸과 마음이 힘든데 남자가 여자의 쇼핑을 즐길 수 있겠는가?


보통 남자가 자신의 옷을 구매할 때도 이렇게 세세하게 보지 않는다. 그냥 한 바퀴 돌고 쓱 보고 마음에 드는 옷 몇 개 입어보고 산다. 옷을 입고 벗고도 귀찮아서 그조차 최소한으로 한다(나도 어릴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날이 갈수록 더하다)


남자는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다.

좋은 날이다. 남녀는 함께 산책을 나왔다. 태양은 적당히 열기를 내뿜고 알 수 없는 꽃향기에 기분이 좋다.

남자는 겨울이라 운동을 하지 않아 오래 걷고 싶어졌다.

"청사포까지 걸어갈까?"

"미안.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발이 너무 아파."

남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보다 신체적으로 약하니까 이해해야 한다고.


이랬던 여자가 백화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넘쳐난다. 남자는 따라갈 수도 없다.

그녀가 했던 말을 거짓말이었을까?

도대체 몇 시간째 걷고 있는 것인지 그녀의 체력을 이해할 수 없다. 의문만 깊어진다.


남자가 물었다.

이렇게 오래 왜 계속 살피냐고.

여자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답한다.

여기 아까보다 천 원이나 더 싸. 대박이지?


남자는 생각했다.

노동비로 따지면 오히려 손해 아닌가?

순수 금액만 따지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의 삶에서 여자를 따라가는 쇼핑보다 힘든 일은 몇 없을 것이다.

더 성숙하게 되면 이것도 즐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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