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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Apr 12. 2023

그리움에 매일 바다에 앉아 있는 그녀

#2. 동백섬 그리고 상생의 길목

사람의 왕래가 드문 조용한 곳에 앉아 있는

인어상이 있다. 황옥공주 인어상이다.

안내를 읽어보니 황옥공주 인어상은

동백섬 해안가에 자리해 있는 황옥공주

인어상은 1974년 처음 설치되었으나,

1987년 태풍 셀마 때 유실되어 현재 상체 부분만이

부산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1989년 높이 2.5 m, 무게 4톤의 청동좌상 인어상을 새로 제작

하여 다시 설치한 것이라 한다.

나는 그냥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황옥공주가 매일 우리처럼 세상의 풍파를 함께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쪽으로 인어상을 바라보니 동그란 태양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후광을 내뿜는 여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아픔과 행복을 모두 지닌 우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인어상의 전설에는 기쁨보다는 슬픔만 려있다.

‘바다 건너 인어나라 나란다국에서 무궁나라 은혜왕에게 시집온 황옥공주가 늘 고국을 잊지 못해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황옥에 비친 고국을 보며 그립고 슬픈 마음을 달랬다.'라고 한다.


그녀는 바다가 잘 보이는 저곳에 앉아 가족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저 바다 건너를 상상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래도 해운대 바다의 아름다운 경관은 그녀에게 많은 위로를 줄 것 같다.

평평한 길을 걷다 다시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해운대 석각이다.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45호인 석각은 신라 말의 시인이자 학자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썼다고 전한다.

최치원이 어지러운 정국을 떠나 가야산으로 입산하러 갈 때, 이곳을 지나가다 자연경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대(臺)를 쌓고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주변을 거닐다가 암석에다 해운대란 세 글자를 음각함으로써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석각에 새겨진 해운대란 각자(刻字)가 최치원의 자필이라고 할 만한 확실한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고려시대의 문신인 정포(鄭, 1309~1345)의 시 가운데 '대는 황폐 하여 흔적도 없고, 오직 해운의 이름만 남아 있구나'라고 하는 구절을 볼 때, 이미 당시부터 동백섬에 석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아쉽다. 나는 혼자 여기를 지나가는데 석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 빼고 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두리번거려도 무엇이 석각인지 못 찾았다. 이정표에는 근처에 있다는데 내가 시력이 좋지 못해 그런지 눈운동만 하고 글은 못 봤으니 최치원 선생님이라도 봐야겠다 생각하고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돌계단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항상 여기를 지날 때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등대도 지나쳤다. 볼 때마다 그 모양이 정겹고 하얀 모습이 이국적인 느낌이다.

나는 돌계단 제일 아래에서 위를 봤다. 오른편으로는 숨겨진 보물처럼 정자가 숨어있다.

붉은색 립스틱을 칠한 고운 여인이 나무 사이에서 인사하는 것만 같다.


한 번 올라가자. 그렇게 높지도 않지만 걷는 것보다 계단을 밟고 가파른 곳을 올라간다는 부담에 사실 잘 올라가지 못한 곳이지만 오늘은 올라가고 싶어졌다.

하나하나 밟고 동백섬의 정상으로 향한다.

그렇게 높지는 않다. 최치원 선생 동상이 보인다. 생전에 해운대가 좋아 이름을 붙이셨다는데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터줏대감이 되어 제일 전망을 차지하셨으니 그 기쁨이 더욱 크실 것만 같았다.


정상은 그래도 아침체조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넓이를 지닌 평지가 있다. 비록 나무들이 있어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정경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숲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사뭇 상쾌해 잘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동백섬은 작지만 알차고 벅찬 곳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오늘 산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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