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롱이 Apr 04. 2023

날 따뜻해지면 무조건 여기로 가세요

옛날 빙수

벚꽃이 숨을 한껏 들어마셨다.

곧 크게 호흡을 터트리며 만개할 듯 부풀어 올랐다.

이쯤 되면 나는 행복한 불안감을 느끼며 위태롭게 나무를 보게 된다. 제일 만개한 그날 이 가로수를 걷고 싶은데 시간이 잘 맞을지 걱정이 되면서도 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은 서늘하고 낮은 따뜻하다. 때늦은 오후가 되니, 봄기운에 벌써 날더우면 항상 찾던 음식이 당긴다.

여러 먹을거리를 소개했지만 오늘은 글 쓰기 정말 편한 곳에 간다. 여기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쉬운 요소를 두루 갖춘 곳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술술 글이 아지랑이처럼 풀리려면 어떤 조건이 있겠나, 일단 감동이 있어야 하겠고, 뇌리에 남아 있는 나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지금 가는 곳은 이 두 가지를 충족하고도 남을만하다. 맛이야 가게에서 직접 먹고 적으면 된다.


 나는 걸어가며 추억을 먼저 곱씹어 본다.

처음 해운대에 왔던 날이었다. 한창 더운 날이었고, 해운대 바다도 데워 질듯 뜨거운 햇볕이 반팔에 드러난 살갗을 찌르는 듯 날이었다. 지인을 만나기로 했는데 예정보다 시간이 미뤄지면서 어딘가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해운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던 나는 오랫동안 부산에 거주 중인 그에게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곳을 추천해 달라 했다.

외관은 허름하지만 맛은 확실한 곳이라고 가보라고 블로그 주소를 내게 보내줬다. 사진의 가게 외관은 옛날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 같은 모습이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파란 플라스틱 의자가 몇 개 있었고, 내가 아는 흔하고 화려한 디저트 가게의 모습은 아니었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사실 블로그에 올려진 음식의 모습도 내가 기대한 것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관심이 갔던 것은 지인에 대한 믿음과 항상 맛보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아니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해운대에 왔으니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함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지금 가로수에 매달려 있는 벚꽃을 보는 것처럼, 나는 약간의 의구심과 미량의 흥분을 동시에 가슴에 담고 가게로 향했었다.

역시 가게는 아담했다. 초라하다 표현해도 될만한 모습이다. 단지 믿음이 가는 것은 가게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이다. 길게 늘어선 줄. 밖에 있는 의자 몇 개는 욕심 낼 수 없을 만큼 꽉 차 있었다. 웃으며 나오는 사람들의 손에는 어릴 적 동네 빵집에서 볼 수 있던 옛날 빙수가 들려있었다. 요즘에는 크고 화려한 빙수가 많다. 값비싼 과일이 가득 올려져 있고 큰 빙수가 넘칠 듯 담긴 빙수 들지만 이곳은 수수하다. 거칠게 갈린 얼음 위에 거의 기본 팥만 담겨있다. 나도 줄을 서서 이 옛날 팥빙수를 받았다. 운이 좋아 빠지는 사람이 있어 철제 테이블에 한 자리가 나서 앉았다. 난 어렸을 때부터 더위를 많이 탔다. 지금도 땡볕에 이곳까지 걷고 줄을 선다고 일어서 있었더니 등 쪽 티셔츠가 물에 젖은 것처럼 축축했다. 이만한 수고를 하고서 받은 내 앞에 이 빙수는 어찌 보면 너무 초라해 보인다. 그 모습은 빙수의 맛보기 전에 이미 한계치를 마음에는 그어 놓기에 충분했다. 더운 날씨에 괜히 고생만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 그래도 먹어보자. 나는 빙수를 섞지 않고 가득 퍼서 맛봤다. 맛있다. 너무 달지도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팥이 사르르 녹는 얼음과 기가 막힌 비율로 혀를 가득 채웠다. 멈출 수 없다. 입에서 팥, 우유, 얼음이 한꺼번에 녹아들기 무섭게 입에 연달아 퍼서 넣었다. 나는 정말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워 냈다. 무슨 일에도 중요한 것은 기초라는데 음식도 이와 같구나. 잘 끓인 팥에 시원한 얼음이 더해지니 더 필요한 것이 없다.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참을 수 없는 이 빙수는 이후 언제나 여름날 들리는 필수코스가 되었다.


주의할 점은 지금 내가 가는 곳은 이전한 장소다.

금 있는 가게는 훨씬 깔끔하고 실내도 넓다.

예전이야 더운 야외에서 먹었지만 지금은 크지는 않지만 훨씬 넓어진 실내에서 즐길 수 있다.

여기까지 걸어오니 일교차가 심해서 가게에 왔을 때는 추웠다. 그래도 빙수는 포기 못해서 팥죽과 팥빙수를 나란히 주문해서 먹었다.

오늘도 빙수에서 행복한 단맛이 올라온다.

오랫동안 계속 올 것 같다.

봄부터 여름까지 너만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