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할 일도 없었지만 먼저 와서 회원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싶었다. 문을 열고 각 방과 거실에 불을 켰다.
벽에 붙여놓은 포스터들이 떨어졌나 확인하고, 냉장고로 간다. 음료수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체크한 후 바닥상태를 확인했다. 습관적으로 보일러를 작동시키려다 멈췄다. 춥지 않다. 이미 아지트 안은 두꺼운 옷을 벗어도 될 정도로 따뜻했다.
'봄이 오긴 왔구나.'
아침에 때 이르게 핀 벚꽃을 봤는데 새삼 계절을 실감하게 한다.나는 입고 있던 회색 재킷을 벗어놓고, 컵라면 하나를 꺼냈다. 일찍 온다고 저녁을 먹지 않아 막상 책 읽을 때 배가 고플까 봐 미리 하나 먹으려는 것이다.
전기포트에 물을 붓고 전원을 켰다.
이 기계는 둥둥이가 기증한 물건이다. 팔팔 끓는 물을 작은 컵라면에 붇고 나무젓가락으로 눌렀다.
어설프게 닫힌 컵뚜껑 사이로 매콤한 국물 냄새가 새어 나왔다. 면이 붇기를 기다리며 자그마한 책상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하얀 책장이 보인다. 아직은 텅 비워진 상태다. 제일 많이 모임을 하는 거실에 한 개, 주방 앞에 한 개, 작은 방에 한 개 이렇게 3개가 최근에 살롱 하우스에 들어왔다.
봄이 왔지만 아직 녹지 않은 눈처럼 한편에 자리 잡은 책장. 방장인 분홍이 가 그렇게도 좋아했다. 사실 저 책장도 회원님이 최근 기부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화장실에 놓인 방향제, 전자레인지, 냉장고, 녹차, 꿀배차 등 참 많이도 가지고 오셨구나.
요즘 1 퍼센트님이 자주 말한다.
"사람의 모든 것은 빌려 쓰는 것입니다."
만나면 실없는 이야기라며 그럼 제가 맡긴 돈 다시 돌려달라고 놀렸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이 안에 진정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회원들이 가지고 온 물건이 좋은 것이 아니다.
그 마음에 감사함을 가진 것이다. 이 감정이 진정 내가 소유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진정 소유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다.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아는 지인은 백화점을 가고 인터넷 쇼핑을 한다.
그녀가 가지고 싶은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다.
페라리를 가진 사람이 진정 그 차 자체를 갖고 싶은 것인지, 우월감을 소유하고 싶은 것인지 평가하라면, 난 차보다 욕망을 구매했다 말하고 싶다. 좋은 차를 타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여유가 된다면 좋은 차, 좋은 집을 사고 싶다.
단지 실제 그것이 진정 소유하는 것인지 묻는다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진짜 삶을 위해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단출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진정 내가 소유해야 할 것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다.
나를 풍족하게 해주는 회원분들의 감사함이 감사하다. 내가 소크라테스처럼 내면의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성인은 아니지만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고 싶다.
잡생각을 하다 보니, 작은 그릇에 담긴 라면이 바닥났다. 남은 국물을 버리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혹시나 모임을 할 때 냄새가 날까 봐 난 공기가 통하게 양 창문을 열었다. 따듯한 기온에 바람이 불어오니 마음이 상쾌해졌다.
오늘은 조촐하게 5명이 모였다. 저번 모임에는 10명이나 모여 자리가 없었는데 적은 인원이다. 봄이 와서 모두들 책보다는 세상을 읽기 위해 나간 것이겠지. 이럴 때면 모임 운영을 내가 잘 못하고 있는지 뭔가 문제가 있는지 걱정하는 마음도 들고, 오히려 다행이라는 양면적인 감정이 든다. 인원이 적으면 진행에 부담도 적고 친밀한 분위기가 나기 때문이다 어느새 5명이 다 찼다. 다들 여러 번 봤던 회원이라 30분은 안부도 묻고 책은 가지고 왔는지 사소한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생 시절, 방학하고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다. 난 이런 감정이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이 순간 이 기억과 감정은 책 보다
깊이 기억되는 것 같다.
우리는 1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마치 1시간 자율학습을 하듯이 조용하며 격렬하게 책장을 넘겼다. 어느새인가 시간은 다 되고, 서로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지한 모임 시간이 되어서 종료를 알렸다. 우리는 뒷정리를 하며 집에 돌아가려는데 시간도 애매하고 뭔가 하고 싶어졌다.
"혹시 이후 약속 없는 회원님들은 오버쿡이라는 게임을 하고 가실래요?"
반장인 분홍이 말했다. 나는 괜히 돌아가고 싶은 회원들이 난처할까 봐 말했다.
"약속 있는 사람 있을 수도 있는데 갑자기 제안하면 어떡해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했지만 웬걸 회원들 모두 좋다고 했다. 평균 연령이 40이 넘는데 5명이 모여서 저녁에 게임이라니.
분홍은 예쁜 초승달 같은 눈을 하고 즐거워하며 닌텐도 스위치를 들고 왔다.
"30분만 합시다."
우리는 서로 컨트롤러를 잡고 한참을 소리를 지르며 게임을 했다. 어느새 30분이 지났다.
내가 말했다.
"와. 책 읽을 때는 30분이 그렇게 길었는데. 뭐죠."
우리는 다 같이 웃으며 맞다고 손뼉을 쳤다. 게임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바다는 조용하고 빌딩은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외롭다. 혼자 있는 사람도 많고, 함께해서 더 외로운 이도 많다. 난 독서모임을 통해 고독을 채우고 있다. 같이 웃고 떠들며 진정 가득 찬 마음을 소유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