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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뭐가 다른 걸까

by 효롱이

한강은 뭐가 다른 걸까

“누가 시켜 먹노. 마트에 가지.”
마흔을 넘긴 형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제 그는 정말로, 포항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은 XX프레쉬니 뭐니 해서 굳이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인데, 형은 그런 걸 도무지 못 믿는다.
“그 비싼 배달을 누가 시키노.”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 물어본 뒤에야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이제 틀딱 다 됐나 보다.”
그 말이, 어쩐지 웃기면서도 묘하게 서늘했다.

서울을 떠난 지 어느덧 15년.
가끔 서울역에 내리면, 늘 같은 감정이 앞선다.
먼지. 도시가 뿜어내는 묘한 냄새.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면 미세먼지가 도시를 안개처럼 덮고 있다.
올해는 그나마 낫다는데, 나는 자꾸만 서울 사람들의 폐가 걱정된다.

의사인 짝꿍에게 물었더니,
“집에만 있고, 지하철 타고 다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간단명료한 대답이었지만, 마음은 그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을 품은 채 압구정으로 향했다.
서울살이 할 적에도 가볼 일이 없던 동네.
이번에는 일부러 한강을 보러 갔다.
내 안에서 한강은 오래전부터 환상의 이름이었다.
시원한 강바람, 웃고 떠드는 사람들, 도시 속 여유의 상징.
하지만 그날, 나는 그 환상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를 알았다.

한강은 내게 충격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쓰레기통 옆에도, 벤치 아래에도, 계단 구석에도.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고, 웃고 있었다.
나는 그 틈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왜, 여기에?’

텁텁한 공기, 강물에서 올라오는 비린내.(촌사람인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멀리서 본 풍경은 어딘가 다른 나라 같기도 했다.
도시의 낭만이라기보다는 도시의 숨통 같은.

최근 노인과 바다라고 불리는 부산은 참말로 아무도 없다.
해운대에는 솔숲 아래에도 자리를 핀 사람이 드물다.
바다가 바로 코앞인데도 부산 사람들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마음먹고 누군가에게 나와 보자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익숙하다.
벌레 많아, 덥다, 귀찮다.
무엇보다 집이 시원하니까.

나는 그동안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더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각자의 휴식을 찾는 방식으로.
그게 현대인의 삶이 된 줄 알았는데, 서울은 아니었다.
서울은 여전히, 사람들을 바깥으로 불러내는 힘이 있는 도시였다.
그게 문화인지, 삶의 방식인지, 아니면 도시 특유의 리듬인지
촌사람인 내 눈에는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부산으로 돌아와 어제 해운대와 광안리를 다시 찾았다.
해수욕장이 개장했지만, 역시나 풀숲에 자리를 펴고 앉은 사람은 드물었다.


그 풍경은 한강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서울의 한강은 대체 뭐가 다른 걸까.
그곳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어떤 이유.
한강을 향해 걷게 만드는 마음의 결.

그건 서울 삶의 치열함일까?
그 정체를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제 영락없는 촌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그날의 한강을 떠올리며 또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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