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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02. 2022

누군가 부탁이란 말로 강요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제일 넓고 빠른 길로 걸어갑니다. 그런데 가끔 그런 날 있지 않나요. 에워가지만 새로 난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고 싶을 때 말이에요. 이런 도전은 때론 취향 저격, 숨은 카페나 맛집을 발견해 쾌감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게 우리는 이런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전은 늘 불안을 동반하기 때문이죠.


도전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승리의 쾌감>을 맛볼지도 모른다

-조지 S패튼


이 말을 다른 관점으로 보면,


도전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패배의 아픔>을 맛볼지도 모른다

- 우리 I마음


라는 말로 바뀔 수 있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보세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효롱씨 뭐해요. 30분 남았어요. 빨리 오픈톡에  마지막 확인 공지 올리세요."

일요일에도 일을 하고 온, 반장 분홍의 목소리 끝이 미묘하게 올라간다.

"잠시만이요. 오늘 모임 장소 대여한 곳에서 전화 온 것 같아요... 여보세요."

나는 총총걸음으로 가는 분홍의 등 뒤에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모임 예약한 분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너무 죄송한데, 모임 시간을 30분 미뤄줄 수 있으신가요? 앞에  예약해둔 팀이 끝나면 정리가 좀 늦어질 것 같아서요."


"네?"


나는 천천히 따라가던 걸음을 멈췄다.


흠칙. 등 뒤가 시리다.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30분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9명의 회원들이 먼 곳에서 각자 오고 있는 상황에 이런 요청이라니... 

난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목은 살짝 굳었고, 때마침 지나가던 오토바이의 검은색 배기가스가 코를 파고들었다.

"효롱님, 안 오고 뭐해요."

"분홍님. 잠시만요. 모임 장소 빌리는 곳에서 전화가 왔는데 30분 늦춰 달라고 말하네요."

"네? 전화 이리 줘 보세요."


이번 정기모임은 사실 해운대 독서살롱의 새로운 도전이다. 

해운대에는 1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일 조용한 장소가 없기에 , 매번 떠돌아다니기를 4년째.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나는 고심 끝에 공유 오피스를 빌려보기로 한 것이 결국은 이런 사달을 나게 했다


예약도 3주 전에 일찌감치 했고. 1시간 전 내가 확인 전화할 때까지 아무 말 없다가, 30분 전에야 전화로 죄송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실질적 통보라니......


계속된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공격은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반! 사!"도 되지 않고, 멈추지 않는다. 결국 나는 "손해배상"이라는 말을 꺼냈고, 상대방은 순식간에 "알겠습니다."로 손바꿈을 한다. 


난 실제 사법고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진 유명한 일화가 생각났다

전설적인 답변으로 면접 불합격 사례로 아직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인 이야기다.

응시자는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맞받아치겠다. 법은 멀리 있고 주먹은 가까이 있지 않으냐.'란 명쾌한 답변으로 주먹보다 강력한  '부적격' 철퇴를 맞았다

난  딱딱한 법보다 부드러운 말이 강한 세상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때로는 저 면접 탈락자의 오답이 세상의 정답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힘겹게 접고, 다시 걸어가지만 몸이 슬며시 좌우로 흔들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혹시나 지친 마음이 모임에 스며들까 축 처진 어깨에 힘을 주었다.

17층에 내렸다. 호수를 확인하고 문자로 받은 비번을 누른 후 문을 연다.


새 건물 냄새에 옅은 종이 책 내음이 섞여 들어왔다. 

뽀얀 책장과 벽, 밝은 회색빛 바닥 위 초입에는 패브릭 소재의 진 파란색 소파가 놓여있다. 그 모습이 마치 새하얀 모래사장 안까지 밀려온 파도 같았다


난 매끈한 바닥을 밟으며 창가 안쪽으로 걸어간다. 갈아 신은 실내 슬리퍼가 바닥을 스치며, 사르르 스르르 소리를 냈다.

큰 통창 밖으로  바다와 건물, 사람과 차가 꽉 채운 도화지 같구나


난 아래를 내려다보며 몸을 늘어뜨리고 의자에 깊숙이 앉았다. 별다방에서 들고 온 묵직한 벤티 사이즈 돌체 라떼를 한 모금 빤다. 달콤한 연유가 쌉싸름한 커피와 함께 식도로 내려간다. 휴우우. 긴 날숨이 나온다. 참았다 핀 담배의 맛이 이럴까. 속이 다 시원하다


지이잉 지이잉, 전화가 다시 울리고,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어가셨나요? 죄송합니다. 시간을 맞춰야 했는데 걱정을 끼쳤네요."


몸이 편안해지니 심장이 노글노글해진 까닭일까


"아닙니다. 의자도 편하고, 뷰도 참 좋네요. 멋진 공간 대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따듯하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내 칭찬에 기분이 흡족해졌는지 상대는 한껏 밝아져 몇 마디 덕담까지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스트레스가 한여름 밤 신기루 같다.

이럴 때 보면, 니체가 영혼과 정신은 단지 몸이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창조된 것뿐이라는 말이 마냥 극단적 의견은 아니구나 싶다.


문제가 나를 괴롭힐 때, 문제를 안고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에라이 모르겠다. 좋은 경치나 보며 커피나 한잔 하자' 할 때,


오히려 복잡했던 문제가 몸으로 들어와 맑은 비눗방울처럼 밀려 나오는 것 같다.


난 안전한 것을 선호한다. 

모험에 대한 쾌감보다는 모험으로 인한 위험을 생각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보다는 내가 아는 검증된 만족, 적당한 행복을 선택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가 있어야 다른 선택지가 생기고, 인생은 풍요로워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매일 가는 길만 간다면, 저 길 바로 옆 나무 사이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있어도 향기 한번 맡지 못할 것이다. 반가운 꽃향기 한번 느낄 수 없다면 우리네 인생사 빨리 돌아가 무엇하리오.


난  매일 떠돌던 익숙한 장소를 벗어나 새로운 모험지에 앉아, 평온해진 몸으로 독서모임에 올 회원을 기다린다. 

곧 우리는 행복에 관한 따뜻한 커피 같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두근반 세근반.

모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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