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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03. 2022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

[Schwung]

"선생님, 제가 왜 그러는 거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뒤적였다. 헐렁한 가운 사이로 하프 윈저로 꽉 매듭진 검은 넥타이가 보였다. 의사는 곧 백색 천수건을 꺼내더니, 더럽지도 않은 안경알을 박박 문지르며 말했다.


"그게... 조금 더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아침에 채혈하다 터진 왼팔 팔꿈치 안쪽이 아려왔다. 3번이나 찔렸던 것은 간호사의 미숙함인지, 옅은 나의 생명력을 찾기 힘들어서인지 모르겠다.


"더 검사를 하고, 알아봐야 한다고요?"


난  바로 앞에 서 있는 의사만 간신히 들릴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독백인지 귓속말인지 나조차 모르겠다.


지금껏 살면서 받은 검사보다 어제오늘 받은 검사가 더 많은 것 같은데... 더 해야 한다니. 이 땅에 어쩜 이토록 다채로운 검사가 있었는지.

아 진짜 대한민국 의학 만만세다.

긴 날숨이 연기처럼 뿜어져 나온다. 내 옆에 놓인 가습기만이 맞담배를 피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다.


젠장 젠장 제엔장!


나도 알고 있다.

세상에서 믿기 힘든 '모른다'는 2가지다.


정치인의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사의 모르겠다. 알아봐야 한다


평소 정치인의 모른다에 골만 났는데

의사의 모른다는 눈물겹다


재테크, 부동산, 주식

그리고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돈.

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치열하게 살았다.

살던 집을 팔며 눈물도 삼키고

차트가 살아서 꿈틀거리던 배움과 깨달음도 얻었다


하나의 종목에 울고

두 개의 종목에 웃고

세 개의 종목에 환호하고

다시 하나의 상폐에 좌절하고

그렇게 나와 돈은 언제나 벼랑 끝 줄다리기였다.


운이 좋았을까, 공력(功力)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처음 내가 목표했던 것은 이루었다.

누구에게는 많을 수도, 누구에게는 소박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면 되었다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지 못했다.

미처 내리지 못한 회전목마는 계속 돌았다.

우웩, 어지러워, 토악질이 난다.

스키에서는 이런 회전을 고상한 독일어로 말한단다


슈붕 [Schwung]



이런 슈붕이 처음 내가 구입한 표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축에 남아있는 원심력 때문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그냥 구르듯, 끌리듯, 밀리듯, 조이듯 그렇게 난 내리지 못한 회전목마를 계속 타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한순간

놀이공원의 불이 꺼졌다. 내 정신의 빛은 강제 소등당하고 검게 물들었다, 마치 어릴 적 장난으로 화장실 조명을 내리듯 그렇게도 갑자기......


정신을 차려보니 주사는 내 피부를 꿰뚫고 있었고, 피는 뽑혀나갔으며, 알 수 없는 수액이 개암나무 열매처럼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지금 내 앞에 선 의사는 애꿎은 안경만 문지르고 있다. 의사요, 알 깨지겠소

병명 : 알 수 없 음

이 간단한 4글자는 주문처럼 나를 덮쳤다.

당신에게 묻겠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인간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상상력이다.

왜냐고? 당장 실험해보자

길가에 지나가는 개를 봐라. 강아지라도 상관없다

단지 당신한테로  걸어오는 개이기만  하면 된다

개는 동물이다. 동물은 인간보다 본능에 충실하다.

본능이란 선천적으로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고, 충동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상기하며, 강아지의 이빨에 집중해라

주인의 예측을 벗어나 당신의 발목이 이빨에 걸리는 장면을 상상해봐라.

어떤가. 평온한 길. 귀여운 개는 당신의 상상에 의해 '혹시나'라는 감정을 자아내고, 결국은 한두 걸음 더 그들과 떨어지게 만들게 되지 않나. 혹시나 당신 옆을 지나가는 찰나 개가 재채기라도 한다면 흠칫 놀랄 것이다.

당신의 심상이 짙을수록 지나가는 개에 대한 두려움도 짙어진다.


위험한 것은 개가 아니다.

위험한 것은 당신의 상상력이다.

당신을 두렵게 한 것은 개의 이빨이 아니라 당신의

통이라고!!!!

흐읍흐읍

짧은 호흡이 팝콘 튀겨지듯 한알씩 튀어 오른다

심장은 환자복을 성난 불청객처럼 쾅쾅쾅 노크해댄다.

자극받은 내 몸의 모든 감각세포가 칼날이 서듯 일제히 늘어서는 느낌이다.


미안하다. 이렇게 상된 말을 잘 쓰지는 않는데.....

미안하다.

난 한없이 작아져 있고,

내 존재는 3마력 모터로 압축된 캔처럼 찌부러져 있다.


내 감정이 이처럼 드날 이유는 두 번째 질문에 있다.

이번이 마지막 질문이겠지.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칼? 총? 핵?

아니다. 아니야.

현존하는 가장 큰 핵폭탄인  50mt 차르 봄바 따위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 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보이의 3000배 위력의 차르 봄바라지만 그딴 것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독한 놈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놈은


무(無)



B. 파스칼은 인간을 무(無)와의 관계에서는 모든 것이라 말했다. 실제가 없는 것은 모든 것을 상상하게 하기에 보이는 적보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이 더 무서운 것이다.

내가 겪고 있는 병명을 알 수 없다 한다. 알 수 없기에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無)

나는 모든 병과 가능성을 상상하며 두려움과 초조로 고사하고 있는 것이다. 내 존재가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다.

내 이름? 귀찮다. 그냥 무명(無名). 그래 난 무명이다.


무명은 이때까지는 몰랐겠지, 그에게 그런 기적이 찾아올지.

당신은 다음 이야기에 나올 진술할 내 고백을 믿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설정이라며 글 전체를 폄훼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하니까.

기적을 믿는 사람과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 말이다.

굳이 믿지 않는 사람에게 설득할 생각도, 믿는 사람의 공감을 얻을 생각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의 말처럼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나의 기적은 적어도 내게는 존재했으니까.


P.S 말이 너무 길어져 끊겠다. 당신과 나의 집중력을 위해서 조금만 쉬다가 다시 보기를 바란다


특히 이번 편은 내용이 어두워 제가 별로 지향하는 바가 아니지만, 적으려는 메시지를 포기할 수 없어 1편,2편,3편으로 나누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1편 :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것(현재)
2편 : 나를 보내고 그녀는 피아노를 쳤을까
3편 : 당신에게만 말하는 신비한 이야기

미흡한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킷해 주신 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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