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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05. 2022

나를 보내고 그녀는 피아노를 쳤을까

은은한 그녀의  비누향은 아직 내 손에 남아 있을까

"안돼, 그렇게 가면 나는 어떡하라고."

차가운 새벽 여인의 울음만이 병동을 울렸다


부유감

순식간에 내 몸은 처럼 뱀처럼,매미처럼 허물을 벗는다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함께 신경이 점점 무감각해지면서, 분리의식은 육체를 벗어나 나를 바라본다


으윽

차가워


둔한 감각 사이로 신기하게 차가움은 더욱 선명하다.

다른 감각이 없기에 모든 감각이 이마에 집중되었기 때문일까. 이 냉기에는 특별한 서늘함이 있다


몇 방의 액체들이 얼굴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신?


지금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물기는 그녀의 눈물일까

꿈꾸듯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생각보다 힘겹지 않게 그녀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젊은 날, 나를 만나 무엇 하나 없이 시작했던 날들

들린다, 나조차 흔들릴 때, 무엇이 그리 괜찮은지 "괜찮다"던 그녀의 목소리

따뜻하다, 몇 푼 남은 통장이 날아갔을 때도 말없이 잡아주던  손의 온기

은은한 그녀의  비누향은 아직 내 손에 남아 있을까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영화를 보듯 천천히 바라본다.

순간 멈칫, 재생 정지.

누군가 중간에 가위로 필름을 자르듯 끊겼다.


아!


난 깨달았다. 내 추억은 오래된 과거에 머물러 있음


돈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함께한 시간은 잃어갔던 것이다.

'바쁘다' 핑계로 그녀가 자주 치던 피아노 연주 한번 듣지 않고 방문을 닫은 날들.


그녀는 나를 보내고 혼자 쓸쓸히 피아노를 쳤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을 테지.


그녀가 치고 싶다는 말은

사실 내게 들려주고 싶다는 말이었으리라

어쩌면, 어쩌면 난 그냥 모른 채 한 것일지도......


죽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남의 이야기 혹은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을까


번쩍

갑자기 밝은 빛이 내려쬔다.

하얀 덩어리가 순식간에 사람의 형상으로 화해 다가와

부드럽게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천... 사이십니까?"

내 목소리는 떨렸다


"네? 아닙니다. 환자분"

즉답. 친절한 영혼 없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겨우 흐릿했던 초점이 잡히고 머리를 살짝 돌려보니, 손에 수건을 든 간호사가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고 있었다.

키득키득

열린 문 사이에 복도에 있던 간호사 2명이 내 침대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내 얼굴을 다 닦고 수액을 점검하던 간호사가 흰 수건을 꽉 쥐더니 앞이마를 문지르며 나갔다.

살짝 덜 닫힌 문 사이로 소리가 들려왔다.


"김 선생님 지금 웃음이 나와요? 환자분 머리 위 선반에 얼음컵 두지 말랬죠? 아니 컵에 물이 맺혀 떨어지는걸 내가 닦고 있는데, 이게 재미있어요? 웃겨요?"

"죄송합니다."

"아니 안 그래도 어제 새벽에 응급실에 일 터져서 부인 오셔서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데, 김 선생님까지 이럴 거예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에요 그래 이제 저 환자분 수면제 양 좀 줄여요. 저렇게 정신없어하면 체크를 해보셔야죠. 체크를"


 간호사라는 분은 이후 몇 가지 일로 더 혼나고 복도는 조용해졌다.


나는 괜히 머쓱하여 눈을 감았다.

어색함은 한순간이고 더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이 해프닝을 계기로 병명에만 집중되었던 생각이 죽음에 이르렀다.


진짜 죽을 수도 있을까

이대로 내 인생의 막이 내려가는 걸까

갑자기 그녀의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다.

버크셔 해서웨이 Class A 주식 한 주보다 그녀와 함께 하는 영화 티켓 단 한 장을 가지고 싶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4800년을 살고 있는 나무, 므두셀라여. 내게 48년만이라도 나눠줄 수 없느냐

눈물이 맺혔다. 아직 내 상태를 정확히 모르는 그녀에게 뭐라 전달할까.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끝이라 생각했던 감정이 흘러내렸다.


나는 기도했다.

부끄러운 기도.

열심히 찬송하지도 않고, 읽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같이 가자던 교회도, 절도 가지 않던 내가

그렇게 부끄럽게 기도했다.

부처님? 하나님?

필요할 때만 찾는 망나니 아들처럼 나는 찾아와 기도한다


난 무엇을 위해 살았나


소설가 버나드 쇼는 그의 묘비에 이렇게 적었다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그럼?


돈만 벌다가 내 이리 갈지 몰랐다

이렇게 적어야 하나.


죽음은 어떤 구두쇠라도 양보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것은 죽음이 인간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짧은 인생, 난 무엇을 위해서 달렸던 것일까


결승선을 남보다 빨리 밟기 위해 나는 얼마나 소중한 것을 버리며 달렸던 것일까

결승 선은 줄일 뿐이고, 마지막이란 의미만을 새기면 됐을 뿐이거늘


달리던 순간순간에 내 찾던 꽃이 있었고

마실 물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나는 무엇이 그리 바빠 눈 돌리지 않고  달렸던 것인가


나는 반성했고

간절히 기도다.



혹시나 이어 글을 읽고 계실 분을 향해 전달드리는 말씀

사실 #8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부터 제 생각과 상상력을 좀더 가미했습니다. 아직 미숙해 다른 시도를 하거나  더하거나 빼고 있습니다.

특히 저 편은 내용이 어두워 제가 별로 지향하는 바가 아니지만, 적으려는 메시지를 포기할 수 없어 1편,2편(현재),3편으로 나누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미흡한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킷해 주신 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1편 :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2편 : 현재 글

3편 : 당신에게만 말하는 신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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