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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10. 2022

태연은 제주도 푸른 밤을 부르며 아파했을까?

그곳은 바로바로바로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나는 지금 바다 위다. 추운 겨울이지만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힘차다. 갈매기만 이따금 갹갹거리며 내 근처를 맴돌고 나는 제주도행 배 위에서 하얀색 이어폰을 깊숙이 꽂고 노래를 듣는다.


그 유명한 곡, 제주도 푸른 밤


1시간 무한반복을 켜놓고, 배를 때리다 사라지는 하얀 물거품을 멍하니 바라보며 흥얼거려본다.


"또나요 혼자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제주도 푸른 밤은 여러 버전이 있지만 나는 태연이 부른 곡을 제일 좋아한다. 그녀의 바다 포말 같은 하얀 피부와 황금빛으로 염색을 한 모습은 제주도 모습처럼 맑고 빛난다. 그것뿐이랴. 그녀의 목소리의 청량함이란. 등이 젖은 여름 운동장, 달리기 하다 갓 얼린 제주 삼다수를 마신 것처럼 션~하다.


제주도의 바다 같은 그녀가, 제주도 산소 같은 목소리로, 제주도를 노래한다니. 가히 환상적이지 않은가. 거기다 자신이 그 제주도로 향하고 있다면 금. 상. 첨. 화


하지만 얼마 전 기사를 보니, 태연은 우울증을 고백했다고 한다.

태연은 제주도 푸른 밤을 부르고 있었을 때도 아파하고 있었을까?

내 생각에, 그녀는 어느 꽉 막힌 서울 한 녹음실에서 노래를 부르며, 제주도를 그리워했을 것 같다.

어쩌면 노래를 들으며 내가 느끼는 두근거림은 태연의 그런 바람이 녹아들어  내게 와닿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예쁜 외모, 엄청난 인기, 남 부럽지 않은 재산
이 모든 것을 가진 그녀를 뭐가 그리 괴롭히고 있을까?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세상에서 우리는 또 무엇에 그리 괴로워하고 있을까?
나는 또 무엇을 훌훌 버리고 가고 있는 걸까?



나는 황금색 지퍼가 달린 검은색 백팩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2021년 마지막 날, 해운대에서 사람들과 함께 한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차가워진 손으로, 외로이 얇은 종이 한 장을 넘긴다.



제목 : 맑은 하늘

하늘이 너무 맑아
눈물이 나려고 한다.

네가 너무 예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니다

내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중에서>


제주도 티켓을 끊으며 게 자른 단발머리처럼, 감상을 그치고 눈을 감았다. 그냥 지금은 파도 소리를 듣고, 짙푸른 바다의 향기를 느껴야겠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날은 저물고, 저 멀리 제주도가 보인다.

짙은 어둠에 싸였지만 푸른 바다가 비치는 듯, 말 그대로 제주도 푸른 밤이었다.

오늘 저 제주도의 푸른 밤이 거센 바람을 타고 육지까지 날아가 그녀와 우리 모두를 위로해 주기를 기도했다.


꽉 찬 짐들을 내렸다. 뭔가 허전하다. 어디 보자 무엇을 빠뜨렸을까? 내 드라이기도 있고 칫솔, 옷가지, 차까지 챙겨 왔는데?

맞다.

난 집이 없다.


나 같지 않은걸. 마음이 그만큼 급했던 걸까나

평소라면 으레 인터넷으로 수십 번을 찾아보고 준비해 왔을 텐데. 나는 나를 대충 집어 제주도에 내던진 것이다.


난 가까이 숙소를 잡고, 먼지 털듯 짐을 내리고 바로 잠이 들었다. 배의 떨림이 생각보다 몸을 지치게 만들었는지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눈을 감았다 뜨니 벌써 오전 10시가 넘었다.


배가 고프다. 마음의 허기인지 지친 속인지 모르지만 배는 강렬히 음식을 원하고 있다


무엇을 먹을까?

(여러분이라면 1년 제주살이 첫끼는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우습게도 카카오 맵을 켜보니, 집은 안 구했으면서 맛집

깃발은 지도에 수두룩 빽빽 꽂아놓았다.

좋은 집은 포기할 수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포기할 순 없다. 이게 나란 여자다.


이 많은 것들 중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 소문이 날까.

난 스마트폰 액정이 깨져라 지도를 다시 또, 다시 다시 또또 계속 계속 살펴봤다.


아 어렵다 어려워.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난 지금 수능 마지막 수학 문제 풀 때 보다 더 신중히 고민 중.


그래 결정했어

이거야


방 조명을 끄고 재빠르게 차키를 주머니에 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로 우다다. 엑셀을 평소보다 조금은 강하게 내려 밟았다. 출발 직전의 말처럼 차가 가볍게 울음을 냈다. 달린다. 달려간다. 그곳으로



내가 간 곳은 바로바로바로




이후 3편에 이어집니다^^


에피소드 분홍(제주도 편)

1편 : 갑자기 여의사가 제주도로 간 까닭은?

2편 : 태연은 제주도 푸른 밤을 부르며 아파했을까?(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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