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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14. 2022

육지사람들아! 제주도 집!  이거 꼭 알고 가라!

"나 집에 갈래"

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이제는 희미해져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이에게.

무슨 까닭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내 입은 뾰로통 튀어나와 있었고. 난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분홍색 가방을 메고 대단한 작전이라도 되는냥 말했다.

"나 집에 갈 거야."


지금보다는 어렸던 20대 시절, 나는 매우 지쳐있었다. 공부해야 할 두터운 책, 다가오는 시험, 인간관계, 부모님의 잔소리. 이 모든 것은 일요일 도서관에도 나와서 공부해야 하는 대학생인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 도저히 안 되겠어. 있어봤자 그냥 시간만 보낼 뿐이야 나는 책상에 놓인 3권의 무거운 전공서적과 마시고 구겨놓은 2잔의 종이컵, 1병의 빈 박카스병을 챙겨서

도서관을 나섰다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생생한 그 친구에게 말했다.

"나 집에 갈래."


30대 나는, 진료를 보고 나면, 약속 잡기도 귀찮아졌다. 그냥 와인 한 병을 사 가지고 와서 서재에 앉아 마시며 책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과장님~ 오늘은 불금 불금! 오늘 어디 가세요?"

이런 물음에는 여유 있게 웃는 척 말하는 게 중요하다, 안 그러면 조금 서글퍼지니까

"저는 집으로 갑니다."


집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내겐 보통사람보다 조금은 더 각별한 장소였다. 나에게 집이란 방들을 모아놓은 집합물이 아니라, 꽉 막힌 매연가스 속에서 겨우 숨을 트일 수 있는 곳, 그야말로 생존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는가?


말은 무슨 말, 한마디로 '지금 제주도에 내 집이 없어  매우 괴롭습니다'라는 얘기다




움직이자. 빨리 나가자. 제주도에 1년 살이 집을 구해서 나만의 작은 성을 구축하자. 나는 숙소에 누워있다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내가 먹는 제주도 고기국수 면발 하나까지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한 에너지로 쓸 것이야.


그렇게 애타게 내 집을 찾아다녔다. 생각보다 힘들었고 예상보다도 그리고 예정보다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제주도에 와서 얼마나 지났는데 오늘에야 짐을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아우 아우

아우우

처음 배를 타고 제주도로 올 때, 내 비록 준비는 없이 왔지만 내 머리에 그렸던 그림 속에 이런 장소는 없었다


난 지금  겨우 구한 집의 식탁에서 밤막걸리와 딱새우를 우걱우걱 먹고 있다.

밤막걸리처럼 어느새 창 밖에는  와있고 난 걸리적거리는 짐을 대충 치우고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며칠 전 먹을 때는 분명 달달한 밤 향기가 입에 남아  혀에 착 달라붙는 막걸리에  딱새우가 스르륵 감겨들면서 행복한 맛을 내는 별미 중 별미였건만, 오늘 같이 우울한 기분에 먹으면 아무리 나라도 마치 향 없이 끈적이는 젤리를 씹는 듯 아무 맛을 느끼지 못한다.

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딱새우는 맛있다..

이럴 때조차 맛있어서 슬프구나. 슬픈데도 맛있어서 살찌겠구나



드르르 드르르

-오 전화다 전화.

오래되어 친언니 자매처럼 자주 다투는 언니가 전화가 왔다. 때로는 쓸데없는 이야기만 해서 서로 귀찮게 할 때도 있지만 지금 같을 때는 누구보다 반가운 말동무다

"언니~"

술이 약간 올라왔나. 난 약간 코가 맹맹한 앓는 소리를 냈다.

"오 분홍분홍 그래. 제주도에 멋진 분홍 하우스 잘 구했나? 놀러 한번 내가 가줘야지. 우리 애랑 같이 분홍

이 제주살이 탐방 가야 하는데. 언제가 좋을까? 제주도라도 지금은 좀 춥겠지. 너무 큰 집 구하면 난방비  많이 나오는데. 욕심내면 안 된다는 언니 이야기 안 잊었겠지"

난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사발에 막걸리를 가득 채워 한잔 들이켰다.


- 언니, 나 지금 원룸이야....


나는 고개를 들어 집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니다. 말이 틀렸다. 둘러볼 필요 없다. 그냥 고개를 들면 된다. 그러면 딱 한눈에 다 보이니까. 싱크대에서 나온 슬라이딩 테이블, 의자 하나, 침대 하나, 붙박이 냉장고, 작은 세탁기. 그리고 그리고 나. 끝


사실 처음 제주도에 와서 제주도심에 이런 원룸을 구할 생각은 아니었다.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난 막연히 마음속에 이런 집을 그린 것 같다.

알맞게 큰 집에 포근한 마당을 가지고 있고, 좀 욕심을 낸다면 창문을 열면 포*리 광고처럼은 아니라도 제주도 바람이 불어와 "아~ 좋은 아침이야."하고 바다와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집.


하지만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연애와 결혼의 차이점이 떠올랐다. 흔히들 말하는 이야기다

연애는 환상, 결혼은 현실

딱 그거다.

내가 그린 단독주택은 환상이었고, 좁은 원룸은 현실인 것이겠지 하지만 특별히 당신에게는 내가 이렇게 고통을 겪으면서 깨달은 바를 알려주겠다.  

흔한 내돈내산 리뷰가 아니다

<내돈내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주목

육지사람들아 제주도  할 때 이거 꼭 알고 가라

크게 딱 두 가지만 알려주겠다.


첫째는, "육지에서 집 구할 때처럼 생각하지 마라"다.

처음에 내가 집을 구한다고 공인중개사를 여러 군데 갔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월세나 전세가 없다고 했다. 난 뭐지. 왜 공인중개사에 다 없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결국 공인중개사님이 내가 딱했는지 알려주시길 육지처럼 근처 공인중개사 막 들어가면 오피스텔이나 원룸 같은 건 없고, 그런 건 특별하게 모은 곳을 찾아가거나, 본인이 오일장 신문에서 찾고 전화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알게 된 곳이 <제주도 오일장 신문>이다. 이것은 육지의 <교차로> 신문과 비슷한데, 요즘 부산에서는 통 못 봤는데 제주도에서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첫 번째가 이런 제주도의 특성을 모른 것이라면 두 번째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의 현실적인 문제다.


실제의 세상은 나의 상상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제주도 집 구할 때, 제주도 단독주택은 오래된 곳이 많아 벌레가 많이 나올 수 있음을 세세하게 체크하기는 힘들고, 쓰레기장이 엄청 멀리 있을 수 있음을 체크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기왕 제주도 왔으니 이것들을 포기한다손치더라도 나 같은 여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 있다.


사실 이것이 내가 좁은 방하나 있는 오피스텔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그것은 안전.


제주도는 외진 곳은 정말 어둡다. 그만큼 진짜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 이런 곳에 여자가 혼자 있다? 남자들은 몰라도 나같이 마음 약한 사람은 무섭다. 만약 여러분이 특히 여성이라거나 안전을 중시한다면 이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밤은 더 깊어졌다. 푸르렀던 제주도 하늘도 완전히 검게 변했고, 별들만이 빛난다. 어느새 술은 깨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난 1월 독서모임(해운대 독서살롱)에서 선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꺼냈다.


여전히 딱딱한 의자이지만 쿠션을 배에 놔두고 힘을 빼고 읽어 내려갔다.


책에는 이런 물음이 있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아는가?

무엇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집과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너무나 간절해서 그리워하는데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진할 정도가 된다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집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조금만 떨어지면 그 거리만큼 그리움은 커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분홍색 메모지와 연필을 꺼내 이렇게 적어 첫 장에 붙여두고 잘 준비를 하러 간다.



그래도 곧 제주의 이 작은 내 집이 그리워질 것 같아 -2022년 1월 어느 치친 밤



에피소드 : 분홍(제주도편)

1편 : 갑자기 여의사가 제주도로 간 까닭은?

2편 : 태연은 제주도 푸른밤을  아파했을까?

3편 : 제주도 첫끼는 무조건 이걸 드셔야 합니다

4편 : 육지사람들아! 제주도 집! 이거 꼭 알고 가라!(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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