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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14. 2022

제주에서 가장 슬픈 날, 당신에게 추천하는 아포가토

행복한 맛이야


난 무덤 안에 앉아 있다.

끝이 없는 무한한 슬픔과 어둠이 있는 곳이 무덤이라면, 잔디 하나 없는 곳도 무덤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불을 껐다. 방구석에 무릎을 잔뜩 끌어당겨 세우고, 거기에 머리를 묻고 앉아 울었다. 나는 장송곡 없는 무덤에 앉아 있는 것이리라


헬기! 헬기! 승강장으로 애기를 옮겨요

빨리

더 빨리요


목에 피가 터지게 소리쳤다. 실제 몇 방울의 핏방울이 튀었을지 모르겠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감정을 누르고, 외치고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쳤다.


어린 아기였다., 1년 채 되지 않은

인공호흡기를 단 이 어여쁜 아이가 호흡을 하지 못한다 했다.

나는 응급실에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고뇌하다 이 가볍고, 예쁘고, 사랑받았을 것이 분명한 천사 같은 아를 부모님의 눈물과 함께 헬기에 태워 서울로 보냈다.



이미 올 때부터 그랬다. 내 잘못은 아니란다.

하지만 모른다. 내가 슬픈 것은 그게 아니다.

우리에게 온 아기를, 내게 온 아기를

저 멀리 내가 이손으로 보냈다.

나는 정말 건강하게 만들고 싶었고

아기의 웃음을 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대게 그런지 안다. 의사는 괜찮다고

그래 가슴 단단한 대단한 의사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 나는 아니다.

10년이 지나도 의사 가운을 벗으면

의대를 입학하던 그 박동으로 심장이 뛴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어보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갑자기 숨을 못 쉬던 아기를

내 작은 손가락으로

그 약한 가슴을 눌러

호흡이 돌아왔다, 기적.

아기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깨어나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난 그때 세상의 모든 빛이 모여 내 앞에 비추는 것만 같았다.


이후로 난 이 직업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소아과 의사는 돈이 안 된다. 아기가 없다.

심지어 뉴스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소아과 의사가 되더라도 죽기 전까지 소아과 전문의로 머물고 싶다.


하지만 태양이 뜨거우면 그림자는 짙어진다.

이 날의 따뜻함은 오늘 같은 날, 너무 차가워 아프게 한다.



며칠째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그냥 집에, 나의 성에 틀어박혔다.


"딸아. 그러면 안 된데이.(안된다.) 좋은 곳 어디 없나? 거기 댕겨와라이.(다녀와라)  거 가서(거기가서) 맛난 거라도 먹으래이."

어머니의 전화다


나도 안다. 병약한 부모님께 걱정을 끼칠 수 없다.

좋은 곳? 맛난 것?


고민도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한적한 외곽으로 들어섰다. 회색빛 시멘트 질감이 살아 있는 건물. 난 큰 창이 있는 문으로 걸어간다.



이 카페로 들어서는 순간 난 더 이상 의사 분홍이가 아니고, 빅토리아 시대 크루 대위의 딸 소공녀다.


벽에는 고풍스러운 그림과 우아한 접시들이 걸려 있고, 둥그런 등받이가 있는 의자는 나를 기다린 듯 편안해 보인다. 입구부터 무거웠던 발걸음은 천천히 우아하게 변해 매끈한 대리석 바닥을 내려 밟고 있다.

작지만 아늑하며 아름다운 곳.

주문을 한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겐다즈 아몬드 아포가토 하나요."

내 목소리는 이미 분위기에 취해 옅게 흥분한 소리가 났다.


수많은 바리스타 챔피언으로 이력이 걸려있지만 굳이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냥 먹어보면 아니까.


창가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기다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이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나왔다.

아포가토에 이런 표현하기는 민망하지만


자태가 영롱하다



예쁜 둥근 쟁반에 야자수 나무같은 아포가토는 제주도와 퍽 잘 어울려서 이건 제주도에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이란 분위기와 함께 했을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니까


빛나는 은색 수저를 들고, 깊숙이 커피가 녹아들도록 하겐다즈 아이스크림과 함께 펀다. 여기에 빽빽하게 꽂힌 아몬드 몇 개가 우르르 딸려 들어왔다.


한입. 음

이건 오늘도...


아주 잘 로스팅된 향긋한 커피의 씁쓸함 사이로 수줍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얼굴을 내민다. 옆에는 정말 고소한 아몬드들이 춤을 추는구나


이건 참~ 행복한 맛이다.

달콤함은 이렇게 사람 마음을 채워주기도 하나보다.

내 깊은 마음속에서 힘과 여유가 새어 나와, 가방에서 살포시 책을 꺼낼 수 있었다. 짙푸른 녹색 표지에는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라는 흰색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한참 맛보며, 마시며, 즐기며, 책을 보니

이런 문구가 나왔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고 떠나는 것 당신이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그래. 난 매일 아픈 사람을 돌보며 세상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순간 책의 저 문구 아이스크림처럼 내 가슴에 와닿고 녹아 스며들어 좁아진 시야를 다시 정상적으로 바꾸었음을 느꼈다.

역시 책과 커피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나는 오늘 나처럼 슬픈 사람에게 달콤한 아포가토를 권하고 싶다.


당신의 슬픔에 한잔




에피소드 : 분홍(제주도 편)


1편 : 갑자기 여의사가 제주도로 간 까닭

2편 : 태연은 제주도 푸른 밤을 부르며 아파했을까

3편 : 가장 슬픈 날, 당신에게 추천하는 아포가토(현재)


부산독서모임 : 해운대.독서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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