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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16. 2022

내가 제주도에서 6개월 만에 쫓겨난 이유

난 6개월 만에 제주도에서 쫓겨난다.

사실 1년 살이를 하러 왔으나, 이르게 핀 봄꽃처럼 떠나려 한다. 그리 급히 오더니, 왜 또 제주 바람처럼 떠나려 하나 묻는다면 그냥 웃을 것 같다.



그래도 내게 어떤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면,

내 첫 대답은 무조건

"제주는 참 좋은 곳이야"

라고 시작할 것이다.


내가 제주도 1년 살이를 적는다고 하니, 평소와 다르게 많은 질문을 받았다. 제주는 그런 곳이었나 보다. 한 번쯤 가슴에 품고, 꿈꾸어 보고, 궁금한 곳


1년 제주살이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일단 난 누군가에게 조언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먼저 시도했던 사람으로 조심스레 의견 정도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 저라면 제주도로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요? 당신은 6개월 만에 왔다면서요?

상대방은 이렇게 내게 당연한 의문을 재차 질문할지도 모른다.


- 네 맞아요. 제가 6개월 만에 돌아가니까
당신도 1년살이를 해보세요.

무슨 말? 그럼 우리 어깨에 힘을 풀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솔직히 말해보자.


왜 당신은 제주도에서 1년을 보내려 하는가?


이유야 워낙 다양하겠지만 돌이켜보면 난 사실 에너지가 바닥났던 것 같다. 그게 딱 집어서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해산물 모둠처럼 각가지 이유들이 모여서 한상 가득 채워졌고, 나는 그 가득참에서 벗어나 기운을 차리고 싶어 제주도에 오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내가 제주를 일찍 떠나는 것은 너무 얻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얻은 것이 많아서였다.


지금도 제주도 하면 아련하다.

제주도 바다의 푸르름, 그 맑은 하늘과 바람, 사람과 음식, 카페 그리고 거기서 읽었던 책들

(산이영 바당이영 몬딱 좋은 게 마씀.)



난 제주도가 동화 속 세상 같았다.


그냥 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오후, 되는대로 한적한 곳에 들어서니, 아니 이게 뭔가? 숲 사이로 예쁜 독립서점이 있거나 카페, 맛집이 있다, 도시라면 있을 수 없는 곳, 있을 수 없는 장소에



난 그곳에서 비밀의 화원의 메리가 되었다. 차이라면 담쟁이덩굴을 걷어내면, 버려진 꽃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들이 알록달록 피어있는 장소를 발견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제주도의 모든 것들은 어느새 나를 채웠고, 난 마음의 힘이 생겨나, 오히려 단단해져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고 싶어졌다


정말 내가 기운을 차라기 위해, 제주도라는 학교로 왔다면 쫓겨나는 것이다. 너는 이미 에너지가 찼다. 떠나라. 나가서 못 다 이뤘던 네 개원의 꿈을 이뤄라. 여기 교실의 한 자리는 또 육지의 지친 학생을 위해 양보하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읽었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좋았나 보다

스승이란 무엇인가. 시인 이성복은 스승은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생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스승이라고. ‘죽음의 강을 건널 때 겁먹고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이쪽으로 바지만 걷고 오라’고.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몽테뉴가 그랬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가 그랬다. 멘토나 롤 모델, 레퍼런스가 아니라 정확하게 호명할 수 있는 스승이 곁에 있다면, 우리는 애틋하게 묻고 답하며 이 불가해한 생을 좀 덜 외롭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이 책의 제일 앞장에는 내가 붙인 분홍색 포스트지가 남아 있다.


- 내게는 제주도가 스승이 아닐까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끝이 좋으면 모두가 좋다.


난 좋은 끝맺음을 하기 위한 것들을 생각했다. 사실 처음 글을 시작하려 할 때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제주도의 바다와 바람소리, 맛집을 담기에는 에피소드로 엮음이 부족함을 느꼈다. 아끼고 있다가  또다시 지칠 나와 지친 누군가에게 보여 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아쉽다. 내가 소개하지 못한 맛집들이 울고 있다. 제주도 에피소드를 마치기 전에 진짜 마지막으로 다음 편에 흑돼지 고깃집을 소개하고, 아쉬운 식욕을 달래고 추억을 되새겨 보려 한다.


고맙수다. 

제주도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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