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은 해운대 백사장 끝에서 연결된 육계도이다. 원래는 섬이었는데 서북쪽에서 머물러 놀던 춘천천의 영향으로 퇴적작용이 일어나 육지와 연결되었다 한다. 그 덕분에 동백섬은 우리가 걸어가 닿을 수 있는 섬이 되었으니 난 강과 바다와 땅에 두루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아침에 시간이 되면 줄곧 동백섬 산책을 즐기는데, 특히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둘레길(해파랑길)을 좋아한다.
이곳으로 가는 길은 해운대해수욕장의 탁 트인 백사장 서쪽 끝에 자리한 조선비치호텔에 있다.
호텔 앞에는 좁은 길이 있는데, 이곳으로 들어서면 높은 파도가 덮치듯 맞이하는 계단이 나오며 동백섬으로 이어진다. 해수욕장은 때때로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날도 있지만 이곳은 비교적 한산해서 나만 아는 골목길에 들어가는 느낌이라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여기서부터가 동백섬이요 해운대 갈맷길 중 2코스인 것이다. 갈맷길이란 말은 부산의 새인 ‘갈매기’와 ‘길’을 합성한 것으로 ‘갈매’는 순수 우리말로 ‘깊은 바다’라는 뜻 또한 가지고 있으니 과연 시민 공모로 선정된 이름답게 의미가 탁월하고 아름답다.
갈맷길은 2009년 ‘걷고 싶은 도시 부산’을 선포하고 그린웨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현재 9개 코스, 21개 구간 278.8km의 길이 만들어져 있다. 동백섬은 갈맷길 중에서도 문텐로드를 시작으로 오륙도 선착장으로 가는 코스며 나는 이 둘레길을 갈맷길의 정수라 생각한다. 2코스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우리 동백섬은 황옥공주 인어상, APEC하우스, 최치원 해운대 석각, 등대, 화산각력암, 동백나무, 소나무, 사스레피나무까지 다채로우며, 푸르른 바다와 동백꽃의 붉은 향까지 덤으로 막 퍼주니 그야말로 마음까지 풍성해지는 길이라 하겠다.
이곳 초입만 해도 해묵은 호텔 건물을 보고, 저 멀리 인파를 보며, 바다를 함께 보며 걷는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내 표현이 과히 과장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나는 소나무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를 밟으며 계단을 올라가는데 근처 곳곳에 동백꽃이 붉게 피어 있다.
동백꽃은 동백섬과 성이 같으니 이 섬의 자매요, 분신이요, 동백섬의 피라고 할 수 있지만 동백섬에는 저 선홍의 동백꽃처럼 짙은 슬픔이 서린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갑자기 파도가 일어나,
한 어부만 돌아오지 못했다. 어부의 아내는 날마다 바다를 보며 남편을 기다리며 울다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고 마을 사람들은 아내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얼마 후 무덤가에 동백나무가 솟아 나와 진하게 붉은 꽃이 피었는데 이것이 동백꽃이다. 그 꽃은 파도처럼
섬 전체를 물들여 동백꽃섬이 되었다. 그리하여 훗날 우리에게 동백섬이라 불리게 된 것이라 한다
난 이렇게 슬퍼도 아름다운 동백꽃을 바라보다,
찬찬히 눈을 돌려 또 다른 비련의 여인인 황옥공주를 만나기 위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길을 걷다 보면 가는 길, 해변가에 돌들이 보이는데. 대체로 짙은 색의 돌들이 만찬을 차린 듯 깔려 있다. 이것은 동백섬에서 볼 수 있는 지질명소로 안산암질 화산각력암이다. 이 암석은 백악기 후기 폭발적인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동백섬을 이루는 몸통과 같아서 이렇게 걸으면 해안가를 따라 이 암석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길 중간에 위치한 흔들 다리를 지나 내려가려니,
길 앞에 노란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머플러를 두른 소나무가 서 있다.
난 짓궂게 길을 막고 있는 나무를 탓하려다 가까이서 보니 그게 아니다. 길이 생기고 난 후 나무가 쓰러진 게 아니라 그가 비스듬히 자는 팔 옆구리 아래로 우리가 은근슬쩍 지나가는 모양새인 것이다.
이것은 나무로 만든 목책을 보면 기존에 있는 자리를 피해 가며 만든 모양새로 알 수 있다.
나무입장에서는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이 자리를 "상생의 길목"라 이름 붙여 봤다. 나무도 거하게 엎어져 길을 막을 수도 있을 터였는데 힘겹게 오른팔을 들어 옆구리 길을 터주고, 사람도 잘라내서 쉬이 작업을 하지 않고 그 모양 그대로 피해 가며 목책을 만들어 주었으니 아름다운 장면 아니겠는가?
난 흐뭇한 미소로 나무에게 속으로 '죄송한데 길 좀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말 붙이며 통과하자니 스쳐가는 솔바람이 솔솔 불어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곧은길을 쭉 가다 보면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앞서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다 했지만 한편으론 또 야속한 게 사람의 마음이다. 조금만 내려가도 바다를 더 가까이 접하고, 외로이 그리워하는 황옥공주가 있는데 지금까지 자주 오지만 이곳까지 내려오는 이는 드물었다
조금의 수고라도 지불하고 굳이 이까지 찾을 필요가 없다는 바쁜 현대인의 발자국은 여기까지 잘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난 자주 찾는 편이다. 날 좋을 때는 황옥공주 옆 바위에 걸터앉아 텀블러에 싸 온 커피를 마시며 잠깐 책을 읽곤 한다. 그것은 그만큼 인적이 드문 덕이지만 황옥공주의 애잔함이 뭔가 종이 사이로 스미어 차분해지는 이유도 있는 것이다.
주민이 전하는 찐 부산 이야기 갈맷길 에피소드 #1이 끝났습니다. 이후는 황옥공주 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