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만이 갖는 특별함
태권도가 역사 속에서 태동할 때와 지금의 태권도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축구 경기에 여러 과학 기술이 도입되고 몇몇 규정이 변경되며 전과는 차이를 보이는 차이를 예로 들 수 있다. 다른 의미에서도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는 만큼 태권도가 전과는 다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태권도의 기술이나 규정에 대해 말하기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태권도의 성격에 대해서이다.
체육 분야를 말할 때 그 세부 분야가 매우 다양해진 오늘날인데, 태권도는 그 세부 분야에서 격투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겨루기이다.
그러나 태권도의 시범을 좋아하는 태권도인으로서 태권도를 (태권도에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처음으로 올림픽의 태권도 경기 시청 후 가질 수 있는 생각으로) 겨루기로만 설명할 수 없어 태권도는 ‘격투’라는 표현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18년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많은 성장을 이루고 있는 품새도 있다. 품새는 무형의 상대 또는 시합 상대와 점수로서 겨룰 수는 있지만 여기서 겨룬다는 것은 태권도의 겨루기, 유도, 권투, 펜싱 등과는 다른 겨룸이 된다.
그리고 자유품새의 경우에는 어떠한 상황에서 사용하는지 정리한 교본이 있는 공인 품새와는 다르게 선수 자신이 태권도 기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표현성을 함유하기에 예술의 분야에 포함될 수 있다.
시범은 겨루기, 품새, 격파 외에 공연에서나 다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할 수 있기에 다른 격투 스포츠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유도, 레슬링, 펜싱, 권투, 무에타이 등등의 격투 스포츠만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다루거나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공연은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다. 예외적으로 격투 스포츠를 중심 소재로 사용하여 흥행하는 영화들이 있지만, 실제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것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반대로 지난 오랜 세월 공연의 주소재가 되는 연기, 무용 등으로는 다른 이와 기술이나 표현성으로 대결을 할 수는 있어도 격투 스포츠와 같이 ‘겨룰’ 순 없다.
태권도는 이처럼 다른 스포츠와는 엄연히 차별성을 갖는 독특함이 있다.
그런데 태권도는 스포츠로만 표현이 가능할까.
과거 아테네에서 시작된 고대 올림픽은 다른 폴리스와 전쟁을 위해 개인의 신체 능력 향상이란 목적이 있었다. 근대 올림픽도 실제 전쟁 대신 각 국가의 스포츠 경쟁력으로 전쟁을 대신한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스포츠가 전쟁을 대체하는 경쟁이기에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엄청난 경제적 이윤을 만들어내기에 그 중요성이 더 부각된다.
그런데 태권도가 지금과 같이 전 세계에 보급되기 전에는,
스포츠로서의 영향력이 지금과 같이 커지기 전에는,
태권도를 교육하는 현장에서는,
스포츠로서의 태권도가 아닌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교육하였다.
무도는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무도의 정신이 이윤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해 마시길, 스포츠의 정신이 자본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옛적부터 동북아시아 나라들(한국, 중국, 일본)에서 발전된 무술은 스포츠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도 아시아권을 벗어난 문화권에서는 무술/무도로서 갖는 문화에 서양의 스포츠와는 다른 매력을 느끼고 이들의 무술을 배우기 원한다.
서양 문화권의 페이스북을 보면 최근, 이전에 비해 옛날 무도의 정신을 보이는 태권도 영상들 공유가 활발해진 것 같다. 최근 발전하는 스포츠로서의 태권도보다 이전의 무도로서의 태권도에 대한 그리움에 한 표현일 테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무도로서의 태권도만을 추구하기에는 어려움이 클 테지만, ‘무도와 스포츠 그 중간에’ 태권도만이 갖는 특별함이 정리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