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의 법칙 vs 프록터의 법칙
잠재의식은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잠재의식은 신념을 가지고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앞에 가져온다.
그렇다면 나쁜 일에 대하여 신념을 가지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왜 '머피의 법칙'처럼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은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위험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얻게 될 이득보다, 입게 될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일은 분명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나에게 손실을 가져오는 일일 것이다. 우리 뇌는 이 손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걱정과 불안을 반복하게 된다. 잠재의식은 이 반복되는 생각을 신념이 있는 상상으로 반영한다. 결국 그 '일어나지 말아야 할 그 일에 대한 상상'은 현실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머피의 법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밥 프록터'의 말대로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라는 반대의 법칙이 훨씬 마음에 든다. 심지어 이 머피의 법칙에 반대되는 법칙이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가진다. 스스로에게 열망하는 것에 대한 강력하고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보내어 신념을 형성하고, 이렇게 형성된 신념을 바탕으로 바라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렇게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과연 내가 남들처럼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때는 그게 몹시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어른이 되고 남들만큼만 사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때였다.
그래서 A4사이즈 종이를 여러 장 이어 붙여서 연도별로 일어날 나의 인생 이벤트들을 적고, 사진을 붙였다.
사실 그때는 간신히 끼니를 해결하며, 고시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이라 상상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차를 사는 시기와 차종, 결혼을 하는 시기와 아이의 성별과 숫자 등.
최대한 상세하게 상상하고 사진을 붙이고, 흐뭇하게 바라보며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힘든 시간을 버티며 고시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결혼한 후 몇 년이 지나고, 책장 정리를 하다가 그 시절에 작성한 '미래도'를 발견한 적이 있다.
1~2년의 차이만 있을 뿐, 고시원 시절에 상상했던 내용들이 대부분 현실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차는 그 시절 사진으로 붙여둔 것과 똑같은 차를 타고 있었다.
결혼을 한 나이도 같았고, 모아둔 자산도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나중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크릿이라는 책에도 나와 있었다.
(물론 부를 이룬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이때부터 상상과 열망, 신념의 힘을 믿기 시작했다.
간절히 바라기만 한다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완전히 무시하고 기도만 하는 등의 행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너무 간절하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열망과 가까운 사람의 정체성으로 변하고, 이 정체성이 열망을 이루어주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즉, 신념이 나를 행동하도록 이끌고, 행동을 지속하도록 안내한다.
나는 이 시절부터 자산시장의 흐름을 공부하고, 신용카드를 모두 없애고, 고정비 지출내역을 화이트보드에 정리하여 벽에 걸어두고, 가계부를 쓰고, 5년 단위 재정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이외에 작은 노력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확고하게 믿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다만 그 '일어날 일'은 반드시 내가 열망하는 일이어야 한다.
부정적인 걱정이나 고민이 머릿속을 차지하려 하면 그 생각을 안 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으로 걱정이나 고민을 밀어내야 한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고민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이 대부분이라 극단적인 고민의 끝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고민이나 걱정을 하기보다 다른 긍정적인 신념으로 고민이나 걱정을 '덮어쓰기'를 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그래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문장은 밥 프록터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변해야 한다.
'일어나기를 열망하는 일은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