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간절함을 인식시키는 일
기도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소 종교적인 색채를 띤다.
노파심에 미리 일러두건대 나는 종교가 없다.
그리고 기도를 꼭 종교를 가진 이들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매일 기도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기도를 정의하고자 한다.
기도는 내가 간절히 바라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기도를 이루어 주는 것은 하느님도 부처님도 아닌 나 자신이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생각한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소원을 빌 수 있다면, 그 소원을 평소에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왔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 소원 또는 바람과 관련이 있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을 것이다.
소망하는 일들을 이루기 위한 작은 실천들로 자신의 일상이 가득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바라는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어느 순간 내 눈앞에 내가 바라던 일이 이루질 것은 이쯤 되면 당연해 보인다.
즉, 기도는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그 일을 간절히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계속에서 인식시키는 것이다.
다만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간절하지 않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원하는지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어도 그것이 타인에 대한 인정욕구가 투사된 것인지, 아니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진정 바라는 것인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 진정 바라는' 소원에 대해서 나의 감정과 모든 인지 체계가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 자신의 기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다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 인지.
아직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여 인내하여야 하는 것 인지.
한편 기도는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은 다른 의미도 가진다.
지금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길 원하며 수행하는 것이 기도다.
그러니 단순하게 '주세요'라는 식의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도는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음과 실천을 멈추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식의 기도가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당장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스스로에게 '주세요'라는 기도를 해봐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준다는 말인가.
하지만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노력과 인내, 열정을 부단하게 투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는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부자 되게 해 주세요."
"부자가 되는 노력과 열정을 부단히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위의 두 기도는 절대자인 누군가에게 하는 것과 스스로에게 하는 것으로 나뉜다.
즉, 행동의 주체가 다르다.
첫 번째 소원은 절대적인 누군가가 행동하여 결과 값을 나에게 가져다 달라는 다소 수동적인 기도다.
그런데 세상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두 번째 기도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그릿을 다하라고 요구이다.
즉, 노력과 인내라는 대가를 치르고 부자라는 결과 값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시간의 문제이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지금의 노력과 간절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견뎌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소서."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제가 언제 평온함을 필요로 하는지, 언제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늘 구분할 수 있는 현명함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