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추억 한 모금

내가 10살 남짓이었을 때였다. 엄마와 나는 외갓집에 갔었고, 점심 때였다.


나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작은 밥상 앞에 둘러 앉았다. 그리고, 엄마가 밥 한 그릇을 들고 밥상에 앉으셨다. 배가 고팠던 나는, 외할아버지와 엄마가 빨리 수저를 드시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께서 엄마의 밥과 당신의 밥을 바꾸셨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 그 밥들을 바꾸시려고 했고, 외할아버지는 완강히 막으셨다.


"아버지, 찬밥은 제가 먹을께요."

엄마의 말씀에, 평소에 말씀이 별로 없으셨던 외할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흔드셨지만, 단호한 표정이셨다.


그때 알았다. 외할아버지께서 가져가신 엄마의 밥은, 찬밥이었다. 외할아버지와 내 앞에는 따듯한 갓 지은 밥이 놓여있었고, 엄마는 찬밥을 드시려던 것이었다.


그때 알았다. 엄마에게도 아빠가 있었다! 찬밥을 드시는 엄마가 내게 있듯이, 엄마에게도 찬밥을 드시는 아빠가 있다는 것을... 순간, 엄마의 몸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 엄마, 나 차례로 몸 크기가 작아지는 것 같았다.


두 분은 찬밥 한 그릇을 두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셨고, 결국 외할아버지께서 찬밥을 드셨다. 엄마는 내게 배고플텐데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하셨다. 엄마에게 아빠가 있다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어린 나는, 그 놀라움에 배고픔을 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종종 보온밥솥에서 밥 한 그릇을 담아서, 찬밥을 만들어서 먹곤 한다. 따듯한 찬밥을 먹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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