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르게 살고 싶은데 왜 결국 비슷해지는가?

동형화, 모방, 불확실성 속의 닮아감

by NOAH KIM


[먼저 보기 : 9. 왜 자꾸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될까?]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10


[각자의 길을 간다고 믿지만, 왜 우리는 점점 더 비슷한 문장과 전략을 갖게 되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답게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취준생도 그렇고,

직장인도 그렇고,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다들 자기만의 강점이 있고 싶고,

자기만의 방식이 있고 싶고,

적어도 자기 삶이 남의 복사본은 아니길 바랍니다.


그런데 현실은 자주 조금 다르게 흘러갑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자기소개는

놀랄 만큼 비슷한 구조를 닮아가고,

직장인의 성과 정리는

놀랄 만큼 비슷한 언어를 닮아가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경력 서사는

놀랄 만큼 비슷한 흐름으로 정리됩니다.


다들 다르게 살고 싶어 하는데,

왜 결과는 점점 비슷해질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사람이 선택할 때

무엇이 적절한지부터 먼저 묻는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정치학자 James G. March와 Johan P. Olsen의

적합성 논리(Logic of Appropriateness)

사람이 언제나 계산된 이익만 따져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나 같은 사람이 하기에 적절한 행동은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선택은 단순히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 정체성, 상황에 어울리는 형식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사람들의 삶이 닮아가는지 조금 이해가 쉬워집니다.


취준생은

자기답고 싶어도

결국 “합격할 만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직장인은

자기 방식대로 일하고 싶어도

결국 “평가받을 만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삶의 복잡함을 다 말하기보다

결국 “시장에 적합한 경력”처럼 정리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즉, 사람은

무엇이 진짜 나다운가만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지금 이 장면에 더 맞는가,

무엇이 더 적절해 보이는가,

무엇이 통과 가능한가를 함께 묻습니다.


그래서 다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 있어도

행동은 점점 더 비슷한 형식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문학이론가이자 사상가 René Girard의 모방적 욕망(Mimetic Desire)

사람이 어떤 것을 원할 때

오직 자기 안에서만 욕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거나 이미 가진 것을 보며

그 욕망을 배우고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브리태니커는 Girard의 핵심 아이디어를

“인간은 사물을 그 자체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원하거나 가진다는 이유로 원하게 된다”는 식으로 요약합니다.


이 이론은

왜 사람들의 선택이 점점 비슷해지는지를 꽤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좋은 직장을 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좋은 커리어를 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리된 삶을 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우리는

그것 자체를 원하는 동시에,

남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강하게 그것을 원하게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합격이

내 불안을 자극하고,

누군가의 이직이

내 방향을 흔들고,

누군가의 성과가

내 기준을 다시 바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욕망은 생각보다 고독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주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자신도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다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조차

종종 비슷한 대상을 향하게 됩니다.


좋은 회사,

좋은 포지션,

좋은 커리어의 흐름,

좋은 성장의 서사.


겉으로는 각자 다른 길을 걷는 것 같지만,

그 길이 향하는 상징적 목적지는

꽤 자주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는

한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더 있습니다.


경제학자 Robert H. Frank의 지위경쟁 관점(Status Competition)

사람이 절대적인 수준만이 아니라

남과의 상대적 위치, 즉 지위와 비교우위를 강하게 의식하며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Frank는 특히 “positional goods”와 같은 개념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재화나 선택을 그 자체의 효용뿐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앞서기 위한 상대적 의미 때문에 더 원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걸 취업, 직장, 이직의 장면으로 바꾸면 더 선명해집니다.


사람들이 자격증을 따는 이유는

단지 자격증이 좋아서만은 아닙니다.


경력을 더 쌓으려는 이유도

경험이 좋아서만은 아닙니다.


AI를 배우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자기소개 문장을 다듬는 이유도

그것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서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상대적으로 뒤처지지 않게 해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남보다 밀리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이 상대적 감각이 강해질수록

사람은 더 독특한 선택보다

더 안전하고, 더 승인받기 쉽고, 더 비교에서 밀리지 않는 선택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래서 차별화를 말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더 비슷해지기도 합니다.


독특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수록

사람은 더 잘 읽히는 방식으로 독특해지려 하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비슷한 형식으로 자기 차이를 포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렇게 됩니다.


자기다움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 자기다움조차 승인 가능한 문법 안에서 표현되고,

욕망은 내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남의 욕망과 비교 속에서 강화되며,

경쟁은 개인의 성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적 위치를 둘러싼 구조 속에서 더 뜨거워집니다.


그러니

다르게 살고 싶은데 왜 결국 비슷해지는가라는 질문은

개성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운 결과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적절해 보이고 싶어 하고,

남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상대적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삶은

생각보다 쉽게 닮아갑니다.


취준생도, 직장인도, 이직 준비자도

서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비슷한 문장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비슷한 전략으로 자신을 다듬고,

비슷한 목적지로 자신을 밀어 넣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금 불편한 질문도 남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요.


아니면

남들이 원하고, 사회가 칭찬하고, 조직이 인정하는 것을

내 욕망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도 남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불확실할수록

왜 오히려 더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사람은 왜 자유로울수록 더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용기가 부족해서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건너기 위해

가장 덜 위험해 보이는 길을 택하다 보니

서로를 더 많이 닮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글 보기 : 11. 차별화를 말할수록 왜 더 비슷한 사람이 되는가?]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12


[참고문헌]


Frank, R. H. (1985). Choosing the right pond: Human behavior and the quest for status. Oxford University Press.


Girard, R. (1965). Deceit, desire, and the novel: Self and other in literary structure (Y. Freccero, Trans.).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61)


March, J. G., & Olsen, J. P. (2006). The logic of appropriateness. In M. Moran, M. Rein, & R. E. Goodin (Eds.), The Oxford handbook of public policy (pp. 689–708).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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