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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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달라지고 싶어 할수록, 왜 더 읽히는 형식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걸까?]
요즘 사람들은
다들 차별화를 말합니다.
취준생도 그렇고,
직장인도 그렇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남들과 다른 강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결국은 나만의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차별화의 결과가
생각만큼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소개서는 다 다르게 쓴다고 하지만
읽다 보면 비슷한 구조를 닮아가고,
경력기술서는 각자의 길을 말한다고 하지만
결국 비슷한 성과의 문법을 닮아갑니다.
다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비슷해질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차별화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부터 봐야 합니다.
경제학자 Michael Spence의 신호이론(Job Market Signaling)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직접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타인이 알아볼 수 있는 어떤 신호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전달하려 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취업시장에서 학위나 자격, 경력은
단지 능력 그 자체라기보다
능력을 암시하는 신호로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차별화가 오히려 비슷한 형식으로 수렴하는지 이해가 쉬워집니다.
사람은 단지
자기답고 싶어서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읽히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통과되고 싶어서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문제는
신호는 혼자만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읽을 수 있어야 의미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독특한 경험도
상대가 가치 있는 신호로 읽지 않으면
차별화가 아니라 잡음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점점 더 자유롭게 차별화하는 대신,
이미 시장과 조직이 잘 읽는 방식으로
자기 차이를 포장하게 됩니다.
취준생은
자기만의 경험을 말하고 싶어도
결국 성실함, 문제해결, 협업, 성장 같은
익숙한 신호의 언어 안으로 자신을 정리합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치열했던 과정,
설명하기 어려운 시행착오,
말로 다 옮기기 어려운 배움보다
결국 수치와 결과, 기여와 임팩트라는
읽히는 신호의 형식으로 자신을 바꿔 적습니다.
즉, 차별화는
무한히 자유로운 자기표현이 아니라
상대가 판독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모두가 차별화를 말할수록
오히려 더 비슷한 방식으로 차이를 설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신호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단지 읽히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높게 평가받고 싶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사회학자 Joseph Berger, Bernard P. Cohen, Morris Zelditch Jr.의
지위특성 이론(Status Characteristics Theory)은
사람들이 집단이나 상호작용 속에서
능력과 가치에 대한 기대를 형성할 때,
단지 실제 수행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더 유능하고 더 가치 있어 보이는 특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사람은 언제나 완전히 중립적인 기준으로 평가받지 않으며,
어떤 특성은 상호작용 안에서 더 쉽게 높은 지위를 얻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이론을 가져오면
왜 사람들의 차별화가 더 비슷해지는지 또 다른 층이 보입니다.
사람은
그냥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게 평가받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차별화의 방향도
완전히 제각각으로 흩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더 신뢰할 만해 보이는 방식,
더 유능해 보이는 방식,
더 세련돼 보이는 방식으로
자기 차이를 만들려 합니다.
결국 이렇게 됩니다.
다르게 보이고 싶지만
막상 선택하는 차이는
“더 좋아 보이는 차이”로 모입니다.
취준생은
독특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도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직장인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고 싶어도
비협조적이거나 미숙해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직 준비자도
남들과 다른 커리어를 말하고 싶어도
불안정하거나 방향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별화를 시도하면서도
계속 안전한 차이,
인정받을 수 있는 차이,
지위를 높여줄 수 있는 차이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쯤 되면
조금 더 근본적인 욕구가 보입니다.
사람은
완전히 똑같고 싶지도 않고,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도 않습니다.
사회심리학자 Marilynn B. Brewer의 최적구별성이론(Optimal Distinctiveness Theory)은
사람에게는 남들과 비슷하게 소속되고 싶은 욕구와
남들과 다르게 구별되고 싶은 욕구가 함께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사람은 완전히 군중 속에 묻히는 것도 원하지 않지만,
완전히 고립된 독특함도 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는 “적당히 비슷하면서도, 적당히 다른 상태”를 원합니다.
이 이론은
왜 차별화가 점점 비슷해지는지를 아주 잘 설명해줍니다.
사람은 독특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속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무 튀는 차이보다
인정받을 수 있는 차이를 선택합니다.
너무 낯선 방식보다
익숙한 형식 안에서의 차이를 선택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보이기보다
“이 집단 안에서 꽤 괜찮게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합니다.
이 욕구는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문제는
모두가 그렇게 움직일 때 생깁니다.
모두가 적당히 다르고 싶어 하고,
모두가 읽히는 신호 안에서 차이를 만들고,
모두가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자기를 조정하면
결국 사람들은 점점 더 비슷한 방식으로 차별화하게 됩니다.
말은 다르지만 구조는 닮고,
이야기는 다르지만 형식은 닮고,
전략은 다르지만 목적은 닮습니다.
그래서 차별화는
점점 더 경쟁의 언어가 되고,
경쟁은 점점 더 비슷한 차별화의 반복이 됩니다.
이 장면이 잔인한 이유는
개성이 사라져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들
자기 나름의 개성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애씀조차
시장과 조직이 읽을 수 있는 언어 안에서만
의미를 갖게 되다 보니
결국은 서로를 더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차별화를 말할수록 왜 더 비슷한 사람이 되는가라는 질문은
허세나 피상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이 시대의 차별화가
자유로운 자기표현이 아니라
읽히는 신호, 인정받는 지위, 소속 가능한 독특함의 조합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르고 싶어서 애쓰지만,
동시에 너무 다르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불편한 균형 위에서
오늘의 자기소개서도,
경력 정리도,
성과 보고도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다르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비슷한 형식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단지 인정 욕구 때문만일까요.
아니면
선택지가 많고 자유가 큰 시대일수록
오히려 더 안전한 길을 택하고 싶어지는 심리가
그 뒤에서 함께 작동하고 있는 걸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사람은 왜 자유로울수록 더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험심이 부족해서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큰 시대를 건너기 위해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자신을 조정하다 보니
서로 점점 더 닮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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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ger, J., Cohen, B. P., & Zelditch, M., Jr. (1972). Status characteristics and social interaction.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37(3), 241–255.
Brewer, M. B. (1991). The social self: On being the same and different at the same tim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17(5), 475–482.
Spence, M. (1973). Job market signaling.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87(3), 355–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