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왜 자꾸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될까?

사회적 비교와 평가 내면화

by NOAH KIM


[먼저 보기 : 8. 불안은 시대의 분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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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답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남이 알아듣는 언어로 자신을 정리하는 이유]


사람은 누구나

자기답게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도

대개는 남을 그대로 따라 살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만의 강점이 있고 싶고,

자기만의 방향이 있고 싶고,

적어도 자기 삶을 자기 언어로 설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다르게 흘러갑니다.


취준생은

결국 합격할 수 있는 자기소개를 쓰게 되고,


직장인은

결국 평가받을 수 있는 성과의 언어로 자신을 정리하게 되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결국 시장이 이해할 수 있는 경력의 흐름으로 자기를 설명하게 됩니다.


마음은 자기답고 싶어 하는데,

문장은 점점 더 비슷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사람이 자기 자신을 혼자서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봐야 합니다.


사회학자 Charles Horton Cooley의 거울자아(Looking-Glass Self)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해할 때

혼자 마음속에서만 자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지 상상하고

그 상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형성해 간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즉, 나는 나를 직접 보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의 눈에 비친 나’를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사람들은 자꾸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되는지 이해가 쉬워집니다.


우리는 단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어떻게 이해될지,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함께 의식합니다.


취준생이 자기소개서를 쓸 때

정말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면접관이 어떻게 읽을지,

조직이 어떤 사람을 원할지,

이 경험이 어떻게 보일지를 함께 생각합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실제로 얼마나 고생했는지보다

그 고생을 어떻게 성과의 언어로 바꿔야 할지를 먼저 고민합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자기 삶 전체를 말하지 않습니다.


시장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경력,

채용 담당자가 납득할 수 있는 흐름,

짧게 설명 가능한 강점으로 자기를 다시 배열합니다.


즉, 우리는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타인이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편집하고 정리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단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시선 속에서 반복적으로 맡아온 역할을

점점 자기 자신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사회학자 Sheldon Stryker의 정체성이론(Identity Theory)

사람의 자아가 하나의 고정된 본질이라기보다

사회 속 여러 위치와 역할을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들의 구조라고 봅니다.


그리고 어떤 정체성은 다른 것보다 더 자주 호출되고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데,

이런 차이를 정체성의 중요도, 즉 살리언스(salience)로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학생, 구직자, 팀원, 관리자, 전문가 같은 역할 속에서

자기를 점점 더 이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이론을 가져오면

왜 사람들은 남의 기준으로 자기를 설명하는 데 점점 더 익숙해지는지도 보입니다.


오랫동안 취업을 준비한 사람은

자기 삶을 “지원 가능한 경험”의 형태로 보기 시작합니다.


직장에 오래 있는 사람은

자기 일을 “평가 가능한 성과”의 형태로 보기 시작합니다.


이직을 오래 고민한 사람은

자기 시간을 “시장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력”의 형태로 다시 읽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저 상황에 맞게 설명하는 것 같았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

정말 자기 자신을 그렇게 이해하는 방식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언어를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언어로도 쓰게 됩니다.


여기까지 오면

조금 더 미묘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의 개인으로만 느끼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으로,

어떤 범주에 속한 사람으로,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하기도 합니다.


사회심리학자 John C. Turner의 자기범주화이론(Self-Categorization Theory)

사람이 언제나 동일한 ‘개인적 자아’만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자신을 특정 집단이나 범주의 구성원으로 인식하며

그에 맞는 기준과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사람은 때로 “나는 나”로 살지만,

다른 순간에는 “나는 취준생”, “나는 조직의 일원”, “나는 경쟁 시장 안의 사람”으로 자신을 읽게 됩니다.


이 이론은

지금의 취업시장과 조직 생활을 볼 때 특히 선명합니다.


취준생은

단순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채용 시장 안에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읽게 됩니다.


직장인은

단순히 일하는 개인이 아닙니다.

“평가 구조 안에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읽게 됩니다.


이직 준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개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에서 다시 분류되어야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자기 고유의 언어보다

그 범주 안에서 통하는 언어를 먼저 익히게 됩니다.


취준생의 말은

점점 자기 삶의 말이 아니라

채용 시장의 문법을 닮아갑니다.


직장인의 말은

점점 자기 일의 말이 아니라

조직이 읽기 쉬운 성과의 문법을 닮아갑니다.


이직 준비자의 말은

점점 자기 변화의 말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 설득력 있는 이동의 문법을 닮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설명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사회와 조직이 이미 잘 알아듣는 방식으로

자기를 번역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대개는 생존에 필요한 능력입니다.


문제는

그 번역이 길어질수록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직접 느끼기보다

설명 가능한 자기, 승인 가능한 자기, 납득되는 자기로

먼저 이해하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때부터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무엇이 더 괜찮아 보이는지가 중요해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가 더 급해집니다.


그래서 불안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자기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읽히기 쉬운 사람이 되려 하기도 합니다.


직장인, 이직 준비자, 취준생이

각자 다른 삶을 살면서도

자꾸 비슷한 문장으로 자신을 정리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따라 하고 싶어서만이 아니라,

남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를 그 문법에 맞춰 재배열합니다.


그러니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된다고 해서

그걸 곧바로 자기 부재나 얄팍한 모방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건 많은 경우

이 시대를 통과하기 위한

매우 현실적인 적응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적응이 길어질수록

조금 불편한 질문은 남습니다.


내가 지금 설명하고 있는 나는

정말 나일까요.


아니면

사회와 조직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공되고 정리된 버전의 나일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도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자기 자신을 남이 알아듣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시작하면,

왜 사람들은 점점 더 닮아가게 되는 걸까요.


왜 다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문장, 비슷한 전략, 비슷한 경로를 택하게 되는 걸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다르게 살고 싶은데 왜 결국 비슷해지는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개성을 잃어서가 아니라,

인정받을 수 있는 형식 안에서만 개성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서로 점점 더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글 보기 : 10. 다르게 살고 싶은데 왜 결국 비슷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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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Cooley, C. H. (1902). Human nature and the social order. Charles Scribner’s Sons.


Stryker, S., & Burke, P. J. (2000). The past, present, and future of an identity theory. Social Psychology Quarterly, 63(4), 284–297.


Turner, J. C., Hogg, M. A., Oakes, P. J., Reicher, S. D., & Wetherell, M. S. (1987). Rediscovering the social group: A self-categorization theory. Basil Black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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