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불안은 시대의 분위기가 되었다.

개인 감정을 시대 구조로 전환해 읽는 글

by NOAH KIM

[먼저 보기 : 7. 요즘 사람들은 왜 늘 아직 멀었다고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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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의 초조함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공기일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자주 불안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불안하고,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불안하고,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도 불안합니다.


사는 방식은 다르고,

붙들고 있는 문제도 다르고,

놓인 자리도 다른데

이상하게 마음의 결은 비슷합니다.


조금만 늦어도 뒤처질 것 같고,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고,

지금도 충분히 애쓰고 있는데

계속 더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감정을 오래 겪다 보면

사람은 쉽게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원래 예민한 사람인가.

내가 남들보다 불안에 약한가.

내가 너무 쉽게 흔들리는 건가.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불안은 너무 넓게 퍼져 있습니다.


한두 사람의 성격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비슷한 말을 하고,

너무 많은 사람이 비슷한 피로를 말합니다.


이쯤 되면

조금 다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정말 문제는

내 마음이 유난히 약해서일까요.


아니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 자체가

사람을 오래 안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사회학자 Ulrich Beck의 위험사회(Risk Society)

현대 사회가 발전할수록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새롭고 복잡한 위험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예전의 위험은 눈에 잘 보이는 가난이나 결핍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위험은 훨씬 더 예측하기 어렵고,

개인이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문제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위험은 줄지 않았고

다만 더 개인화되고 더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요즘 사람들의 불안이 왜 이렇게 넓고 오래 퍼지는지 이해가 쉬워집니다.


취준생은

내가 뒤처질 위험을 늘 관리해야 하고,

직장인은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지 못할 위험을 관리해야 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잘못된 선택을 할 위험까지 계산해야 합니다.


예전보다 선택은 많아졌지만,

그 선택이 실패했을 때의 책임은

점점 더 개인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니 사람은

자연히 더 오래 긴장하게 됩니다.


위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가 겹칩니다.


사회학자 Zygmunt Bauman의 액체근대(Liquid Modernity)

오늘의 사회가

예전처럼 단단하고 오래 지속되는 질서보다,

더 유동적이고 더 쉽게 변하는 상태로 바뀌었다고 설명합니다.


직업도, 관계도, 경력도, 기준도

예전보다 훨씬 덜 고정적이고 덜 오래 갑니다.


단단함이 줄어들수록

사람은 더 자주 자기 자신을 다시 정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안정감보다 불안정을 더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말은

지금의 직장인과 취준생에게 아주 낯익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를 준비해서 하나를 얻고,

하나를 얻으면 한동안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겨우 하나를 얻어도

그다음을 바로 준비해야 하고,

하나를 통과해도

그 통과가 오래 지속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도

좀처럼 안도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길은 있는데

길 위의 바닥이 계속 움직이는 느낌입니다.


그 위에서는

열심히 걷는 것만으로는

안정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계속 확인해야 하고,

계속 업데이트해야 하고,

계속 자신을 조정해야 합니다.


불안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분위기로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 자체가

한 번 안심하고 멈춰 서기 어렵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불안은

막연한 느낌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은 불확실할수록

무엇이 공정한지,

무엇이 예측 가능한지,

무엇을 믿고 따라가야 하는지에 더 민감해집니다.


조직심리학자 E. Allan Lind와

사회심리학자 Kees van den Bos의

불확실성 관리 이론(Uncertainty Management Theory)

사람이 불확실한 상황에 놓일수록

단지 결과만이 아니라

절차와 기준, 공정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미래가 흐릴수록

사람은 ‘무엇이 맞는 규칙인가’,

‘이 과정은 믿을 만한가’를 더 예민하게 따지게 됩니다.


이건 왜 중요한가.

요즘 사람들의 불안은

단지 일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기준인지 자꾸 흐려지기 때문에 커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하면 충분한가.

어떤 방식이 통하는가.

지금의 기준이 내년에도 유효한가.


이 질문들이 계속 열려 있으면

사람은 쉽게 지칩니다.

노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노력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가

늘 조금씩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의 불안은

개인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구조의 문제입니다.


내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을 만들어내는 조건은

내 바깥에 더 많이 놓여 있습니다.


위험은 더 가까워졌고,

질서는 더 유동적이 되었고,

기준은 더 자주 흔들립니다.


이 조건에서는

불안이 특별한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감정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니

요즘의 불안을

너무 쉽게 성격 탓으로만 돌려버리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문제는 내가 유난히 약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사회와 조직이

사람을 오래 안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불안을 시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각자 다른 선택을 하고,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며,

자기만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삶들이

자꾸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리는 이유는

분명 개인의 마음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사람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제대로 관리하고 증명할 책임도

함께 개인에게 넘겼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불안은

억눌린 감정보다

관리해야 할 과제가 되었고,

개인의 약점이라기보다

시대를 버티기 위한 기본 감각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이렇게 불안이

시대의 분위기처럼 퍼져 있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남이 만든 방향을 따라가며,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증명하려 할까요?


왜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살고 싶어 하면서도

자꾸 남의 눈으로 자기를 읽게 되는 걸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우리는 왜 자꾸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불안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자기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인정받기 쉬운 방식으로

자신을 번역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다음글 보기 : 9. 왜 자꾸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될까?]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10


[참고문헌]


Bauman, Z. (2000). Liquid modernity. Polity Press.


Beck, U. (1992). Risk society: Towards a new modernity (M. Ritter, Trans.). Sage.


Lind, E. A., & Van den Bos, K. (2002). When fairness works: Toward a general theory of uncertainty management. In B. M. Staw & R. M. Kramer (Eds.), Research in organizational behavior (Vol. 24, pp. 181–223). Elsevier Science/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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