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없는 노력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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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것보다 더 사람을 오래 지치게 하는 것은, 애써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사람은
힘든 것만으로는 바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이게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느끼면 버팁니다.
지금의 고생이
조금 뒤에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면
생각보다 오래 견딥니다.
취준생도 그렇고,
직장인도 그렇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준비가 힘들어도
이게 언젠가 기회로 이어질 것 같으면 버티고,
일이 많아도
내 노력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읽히고 있다고 느끼면 버팁니다.
그런데 어떤 순간부터
사람은 급격히 무너집니다.
단순히 일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단순히 바빠서도 아닙니다.
애쓴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는 감각이 생길 때입니다.
내가 쏟은 시간과 에너지,
참아낸 감정과 버틴 시간이
결국 큰 차이를 만들지 못할 것 같을 때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빨리 지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사람이 단지 결과의 많고 적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공정한가부터 먼저 따진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조직행동학자 Jerald Greenberg의
조직공정성 이론(Organizational Justice Theory)은
사람이 자신의 보상과 평가를 받아들일 때
단지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얼마나 공정한 기준과
절차를 통해 주어졌는지를 함께 본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은 결과가 좋아도 불공정하다고 느끼면 흔들리고,
결과가 아쉬워도 절차가 납득되면 조금 더 버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사람을 깊게 지치게 하는 것이
단순한 고생보다 허무함인지 이해가 됩니다.
취준생이 정말 힘든 것은
준비의 양 자체보다
무엇이 통과의 기준인지 끝내 선명하지 않을 때입니다.
직장인이 정말 지치는 것도
업무량 자체보다
내가 쏟은 노력이 어떤 방식으로 평가되고 있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때입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리하고, 배우고, 버티고, 다시 움직이는데
그 과정이 공정한 판 위에서 읽히고 있다는 느낌이 약하면
사람은 자꾸 힘이 빠집니다.
그래서 피로는
양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감각의 부재에서도 옵니다.
그런데 공정성만으로는 아직 설명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 결과가 공정한가를 따지는 동시에,
애쓰면 정말 달라질 수 있는가도 함께 따집니다.
조직심리학자 Victor H. Vroom의
기대이론(Expected Theory of Motivation)은
사람이 열심히 움직이게 되는 이유를
세 가지 연결 속에서 설명합니다.
내가 노력하면 성과가 날 것이라는 기대,
그 성과가 실제 보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그 보상이 나에게 정말 가치 있다는 감각입니다.
즉, 사람은 단지 성실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력 → 성과 → 보상 사이 연결이 믿을 만하다고 느낄 때 더 오래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이 이론을 취업과 직장, 이직의 장면에 가져오면 더 선명해집니다.
취준생은
열심히 준비하면 결과가 나아질 거라고 믿을 때 버팁니다.
직장인은
지금의 고생이 나중의 평가나 성장으로 이어질 거라고 느낄 때 버팁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지금의 공부와 정리가 결국 더 나은 이동으로 연결될 거라고 믿을 때 버팁니다.
문제는 이 연결이 흐려지는 순간입니다.
노력은 하는데 성과가 나지 않는 것 같고,
성과가 나도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 같고,
보상이 와도 내가 원한 것이 아닌 것 같을 때.
그때 사람은
단순히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이유 자체를 잃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일의 양만이 아니라
노력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기대의 붕괴입니다.
이 기대가 무너지면
사람은 점점 더 묻게 됩니다.
내가 이걸 계속 해야 하나.
이렇게 해도 달라지는 게 있나.
내가 더 애쓴다고 뭐가 바뀌나.
그리고 이 질문이 오래 반복되면
감정은 더 어두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심리학자 Martin E. P. Seligman의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자신의 행동과 결과 사이에 연결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점점 시도 자체를 줄이고
나중에는 바꿀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무기력하게 머무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핵심은 단순한 실패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학습하는 상태입니다.
이 개념은
왜 어떤 피로는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사람을 오래 주저앉히는지 설명해줍니다.
취준생이 몇 번의 탈락 끝에
더 이상 자기소개서를 고쳐도 의미가 없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직장인이 몇 번의 고생 끝에
결국 읽히는 사람만 읽힌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이직 준비자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어차피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그때 무너지는 것은
자존심만이 아닙니다.
행동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감각 자체가 함께 무너집니다.
그래서 “애쓴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는 감각은 위험합니다.
이 감각은
사람을 잠깐 서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력의 의미와 행동의 효능감까지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버팁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읽힐까 고민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도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면
사람은 서서히 다른 결론에 도달합니다.
더 애써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나는 바꿀 수 없는 게임 안에 있는 것 같다.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편이 덜 아프다.
이때부터는
게으름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게으름이 아닐 수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감각이
사람을 멈추게 만들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대가 오래 부서져서 지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공정성과 보상, 변화 가능성에 대한 감각이 함께 닳아서 무너집니다.
이 지점을 놓치면
우리는 쉽게 말하게 됩니다.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조금만 더 버티면 되지.
원래 다 힘든 거지.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을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힘든 현실 그 자체보다
애씀과 결과 사이의 연결이 자꾸 끊어진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때는 많은 일을 하면서도 버티고,
어떤 때는 이전보다 덜 힘들어도 훨씬 더 빨리 지칩니다.
문제는 에너지의 총량만이 아니라
그 에너지가 의미 있게 돌아오고 있다는 감각의 유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애쓴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는 감각을
단순한 투정이나 예민함으로만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그 감각은
공정성에 대한 질문이고,
보상에 대한 질문이고,
내 행동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이 오래 방치되면
사람은 결국
실패보다 더 깊은 상태로 내려갑니다.
아무리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즉, 무너진 기대와 무력해진 의지의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오래 흔드는 것이
실패보다 애매함과 불확실한 보상이라면,
정작 우리를 가장 지치게 하는 상태는
분명한 탈락이 아니라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은 상태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실패보다 더 사람을 흔드는 것은 왜 애매한 정체인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사람을 가장 오래 무너뜨리는 것은
분명히 끝난 실패가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채 계속 버티게 만드는
애매한 상태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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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ell, D. E. (1982). Regret in decision making under uncertainty. Operations Research, 30(5), 961–981.
Greenberg, J. (1987). A taxonomy of organizational justice theories.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2(1), 9–22.
Seligman, M. E. P. (1975). Helplessness: On depression, development, and death. W. H. Freeman.
Vroom, V. H. (1964). Work and motivation. Wiley.